40년 전 ‘위스키 호수’ 사건, 2024년의 웹툰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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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풀 꺾였다고 하지만, 한동안 위스키가 정말 큰 유행이었죠. 에디터도 참 좋아하는데요. 오늘은 위스키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 겁니다. 또 만화 아닌걸 가져왔죠? 하지만 에디터의 칼럼을 읽어왔던 분들이라면 아실 겁니다. 어떻게든 만화랑 연관 지어 볼게요. 그럼, 출발해 볼까요?

위스키는 어떤 술인가?

오늘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위스키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가 필요합니다. 왜, 위스키 뒤에 ‘12년’, ‘15년’같은 숫자가 붙는 건 다들 아실 거예요. 예를 들어 조니워커 블랙라벨은 12년 숙성, “더 글로리”의 연진이 둔기(?)로 유명한 그 술병은 ‘로얄 살루트 38년 더 스톤 오브 데스티니’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38년 숙성 위스키인 거죠.

또 스코틀랜드에서는 법적으로 ‘위스키’라고 이름을 붙이려면 최소 3년 이상의 숙성기간을 가져야합니다. 반드시 오크통 숙성을 3년 이상 거치도록 하다보니 숙성이 길어지고, 긴 숙성기간은 풍부한 향과 풍미를 제공하죠. 그런데 3년 숙성 위스키는 잘 쓰지 않습니다. 보통 시장에는 8년 이상 숙성 위스키가 많고, ‘엔트리(Entry-입문용)’ 위스키라고 불리는 라인은 12년입니다.

이제 문제가 좀 보이시나요? 위스키 산업은, 12년 앞을 내다보고 해야 하는 산업입니다. 그래서 수도 없는 시행착오를 겪어왔습니다.

1800년대 아이리쉬 위스키의 몰락과 1980년대 ‘위스키 호수’ 사건

위스키 산업의 부침을 이야기하자면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요 꽤 재밌을 겁니다. 아일랜드에서 만드는 ‘아이리쉬 위스키’는 세계 최초의 위스키 생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근본있는 곳이고, 인기도 많았죠.

이렇게 근본있는 위스키니까, 당연히 콧대도 높았습니다. 아이리쉬 위스키는 ‘단식 증류기’로 3번 증류하는 ‘트리플 디스틸레이션(Triple Distillation, 3번 증류했다는 뜻)’ 방식을 택하는데요, 세번이나 증류 과정을 거치다보니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1832년 코페이 증류기가 도입됩니다. 코페이 증류기의 다른 이름은 ‘연속식 증류기’인데, 당연히 단식증류기보다 생산량이 비교할 수 없게 많았죠.

그런데 콧대높은 아일랜드의 증류소들은 “위스키의 풍미를 해치는 근본없는 행위”라면서 연속식 증류기를 거부합니다. 한번 증류로 많은 양을 뽑아내는 연속식 증류기와, 한번씩 나눠서 세 번을 증류해야 하는 아이리쉬 위스키, 가격 경쟁력을 가지려야 가질 수가 없었죠. 그러니 판매량은 계속해서 줄어들었는데, 이미 대세는 스코틀랜드의 스카치 위스키로 넘어간 뒤였습니다.

결과는 어땠냐구요? 아일랜드 전역에 30여개소가 있었던 증류소는 1966년이 되면 단 하나의 회사, “아이리시 디스틸러스” 아래 딱 2개의 증류소(부시밀, 올드 미들턴)만이 남게 됩니다. 완전 폭삭 망한거죠.

그럼, 대세를 잡은 스코틀랜드 위스키는 승승장구 했냐구요? 물론 금주법 이후인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진 나름 괜찮았습니다. 그 괜찮았던 것이 화근이 됩니다. 아까 위스키 산업은 ‘적어도 12년’을 내다보고 해야 된다고 했죠? 그래서 위스키 산업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결정이 느립니다.

거의 한 세대에 가까운 성장기를 겪고 나서, 스코틀랜드 위스키 산업은 큰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생산량을, 늘린다!” 생산량을 늘린다는 말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 결실은 아무리 빨라도 3년은 걸립니다. 더군다나 ‘생산량을 늘린다’는 말 뒤에는 저장 공간이 늘어난다는 말도 있습니다. 1960~70년대에 고속성장을 할 거라는 믿음으로 생산량을 늘리면서, 추가 투자도 단행합니다. 당연히 숙성고를 짓기 위한 부지를 매입하고, 추가 숙성고를 건설하는 등 많은 투자가 따랐죠. 오랜시간 안정된 성장을 유지하던 스코틀랜드 위스키 증류소들은 이제 그럴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시장이 변했습니다. 숙성고에 위스키는 쌓여가고 있는데 소비자들은 보드카, 럼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과 파티음료로 취향이 넘어갔거든요. 이미 투자가 집행되고 공사와 증산은 이미 멈출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넘쳐나는 위스키를 두고 당시 언론에서는 “위스키 호수(Whisky Loch)”라며 위스키 증류소들의 무능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증류소들이 쓰러지기 시작합니다.

몰락은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한다

1825년 문을 열었던 유서깊은 포트앨런(Port Ellen) 증류소가 1983년 문을 닫습니다. 마찬가지로 1825년 설립된 글렌누리 로얄은 ‘로얄’이라는 칭호를 받은 몇 안되는 증류소였는데, 1965~66년 증류기를 추가 설치하며 증설했다가 20년만인 1985년 문을 닫게 됩니다. 브로라(Brora) 증류소는 1819년으로 더 역사가 긴데요, 여기도 마찬가지로 1983년 문을 닫았죠. 심지어 위스키 투자 붐이 일었던 1965년 설립된 벤 와이비스(Ben Wyvis) 증류소는 12년 숙성 위스키를 출시하지도 못하고 1977년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투자가 많았던 만큼, 문닫는 곳도 많았던 겁니다.

이렇게 1983~1985년 집중적으로 위스키 증류소들이 소비량 급감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으면서 이 시기에 문닫은 증류소들을 “침묵의 증류기(Silent Still)”또는 “퇴역 증류소(Mothballed Distillery)”라고 부릅니다. 아이리쉬 위스키와 경쟁에서 승리하고 패권을 잡아 폭발적인 투자를 했던 만큼 충격은 컸습니다. 하지만 이게 살아남은 증류소, 그리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는 수집가와 야망가들에겐 오히려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먼저 살아남은 증류소들은 당연히 경쟁자가 사라졌으니 경쟁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증산해놓은 위스키들을 저장해야 한다는 부담은 있었지만, 그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00년대, 다시 인기가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그때 저장해 놓고 팔지 못했던 위스키들은 15년 이상 숙성된 ‘고숙성 원액’이 되어 비싼 값을 받고 팔 수 있었죠.

수집가들의 입장에선 ‘다시는 구할 수 없는’ 귀한 위스키가 시장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문을 닫은 로즈뱅크 증류소의 30년 숙성 위스키는 약 3천달러(400만원) 정도에 거래됩니다. 다시는 구할 수 없는 한정판이니까요. 또 조니워커로 유명한 디아지오에서는 매년 ‘고스트 앤 레어’ 시리즈로 문 닫은 증류소의 원액이 섞인 “조니워커 블루라벨”을 기존보다 비싼 가격에 출시하죠. 2019년에는 아까 말했던 ‘포트앨런’ 증류소의 원액이 섞인 “조니워커 블루라벨 고스트앤레어 포트 앨런”이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야망가들의 입장에선 싼 값에 좋은 증류기 뿐 아니라 ‘증류소’를 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증류기는 새로 만들어야 하지만, 증류소는 실력만 있다면 쌓여있는 원액으로 좋은 술을 만들수도 있는 거거든요. 1967년 문을 열었다가 1985년 폐쇄한 ‘글렌알라키’ 증류소는 한국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은 증류소이기도 한데요, 1989년 캠벨 증류소가 이곳을 구매했다가 2017년, ‘글렌드로낙’을 되살린 야망가 ‘빌리 워커’의 손에서 부활에 성공합니다.

웹툰은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이제 웹툰 이야기를 해야죠. 웹툰은 여기서 뭘 고민하고, 얻어갈 수 있을까요? 먼저, 에디터는 위스키 호수 직전의 상황이 지금 웹툰시장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생각입니다. 말하자면 굉장히 빠르게 생산량이 늘었고, 제대로 된 시장조사나 기반 없이 시장에 진입한 곳이 많은 상황이라는 거죠. IP 생산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반면 코로나19 이후 수요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떤 지표로 보아도 트래픽 감소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팝업으로, 공연장으로,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거든요. 연극과 뮤지컬 매출액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고, 야구와 축구 관중은 코로나 이전을 넘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웹툰이 고민해야 할 첫번째가 바로 오프라인 시장으로의 접근입니다. 이건 지금 팝업을 통해 진행되고 있는 중이죠.

두번째는 롱테일 전략입니다. 롱테일 전략은 상위 20% 매출뿐 아니라 하위 80%가 내는 매출을 늘림으로써 전체 시장의 매출액을 끌어올리는 비즈니스 방법입니다. 현재 웹툰은 말하자면 상위 인기작이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는 있지만, ‘꼬리’가 두텁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시장의 안정적인 성장은 꼬리 부분이 두터워질 때 일어납니다. 실제로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나 소위 ‘잘나가는’ 제품의 매출액도 중요하지만, 자잘한 비인기 제품의 매출이 전체의 50%를 차지한다고 하죠. 이런 방법을 만드는게 중요합니다.

롱테일을 위한 전제조건들 : 웹툰 플랫폼의 전략

이런 롱테일 전략을 위한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아주 많은 숫자의 유료고객(PU, Paying User)입니다.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는 고객이 아주 많다면, 상위권은 아니지만 ‘매력적인’ 상품을 구매하려는 고객도 늘어날 겁니다. 유료고객이 많을 것. 이게 롱테일 비즈니스의 가장 큰 전제조건입니다.

위스키 시장의 부침을 가져온 ‘위스키 호수’ 사건 역시 유료 구매고객의 감소에서 시작했습니다. 블렌디드 위스키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롱테일’ 전략을 잘 갖추고 있었는데도 유료고객 감소는 치명적이었죠. 에디터는 여기서 웹툰 플랫폼의 전략을 다시한번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먼저 카카오엔터의 경우 ‘마켓’ 개념으로 접근했습니다. 말하자면 아마존의 롱테일 비즈니스가 성공적인 것은, 애초에 거기서 모든 제품을 유료로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접근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모든 고객 = 유료 고객’이라는 접근으로 시작한 거라고 본다면, 카카오엔터가 무료 쿠폰이나 캐시를 푸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고객은 유료로 돈을 쓸 사람이라는 전제조건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애초에 모수를 키우기가 어렵다는 점이죠. 생필품을 판매하는 아마존과 달리, 웹툰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취향을 기반으로 합니다.

지금 카카오엔터가 겪고 있는 부침은 단순히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카카오엔터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도 함께 있는 셈입니다. 말하자면 위스키 호수 사건과 마찬가지로 생산량을 늘렸는데, 수요가 줄어든 상황을 마주한 거죠. 그래서 해외 진출과 활로 모색이 정말 중요해졌습니다.

네이버웹툰은 반대로 생각한 걸로 보입니다. ‘어차피 일정 비율은 유료 고객이 있다면, 전체 숫자를 압도적으로 늘리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 고객 숫자를 늘림과 동시에, 유료고객 비율을 높이고자 하는 전략입니다. 실제로 네이버웹툰은 최근 ‘몰아보기’ 서비스를 시작했죠. 그 전에는 안 보던 독자들, 또는 몰아보려고 했는데 유료화가 되어서 아예 포기한 독자들이 ‘1시간동안 몰아보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누가 보기엔 ‘터무니없는 할인폭’ 이지만, 반대로 보면 ‘무료 고객이었던 독자가 유료 독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전략’인 거죠.

롱테일 전략을 잘못 생각하면, ‘그저 그런 상품도 한번 구매가 일어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세상에서 ‘거기서 구매한 물건은 쓰레기’라는 인식이 얼마나 큰 마이너스가 될지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죠. 웹툰도 마찬가집니다. 특히 취향 기반으로 소비되는 웹툰은 보다 소비자의 취향을 잘 분석해야 합니다.

유료고객, 플랫폼 전략, 그리고 창작단에서 소비자 취향에 대한 이해까지. 이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져야 웹툰은 1980년대 위스키처럼 ‘호수처럼 쌓여있는’ 웹툰을 보며 씁쓸해하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불황의 징조가 확인되는 시기를 건너게 될 겁니다. ‘침묵의 제작사’나 ‘퇴역 제작사’같은 표현들이 등장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장을 탓하기보다 우리가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법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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