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봄이 오기를 ? 홍콩, 봄 전시 기획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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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 이렇게 올 줄은 미처 몰랐던 2019년, 홍콩 시위는 거의 일년 내내 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국제 시사 뉴스 정도로 여겨지던 홍콩의 사태가 계속되면서, 일련의 이미지들이 내게 남았다. 2020년, <홍콩, 봄> 전시를 기획하게 된 이유가 된 바로 그 이미지들이었다. 어떤 이미지들을 통해 <홍콩, 봄>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는지 복기해봤다.

 

* 공항을 점거한 홍콩 시민들

 

출근길에 스크롤을 내리다 사진 하나에 잠깐 스크롤을 멈췄다. 홍콩 공항을 가득 메운 시위대의 모습이었다. ‘홍콩 편에 서달라’며 공항을 점거한 시민들의 눈빛은 결연했다. 모든 항공편이 취소되었고, 홍콩 접경지역으로 중국 군대가 이동했다는 뉴스도 들렸다. 그럼에도 무언가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았다. 홍콩은 비행기로 네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 거리였고, 항공편이 다시 풀리면 나는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돈만 있으면 홍콩에 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이미지는 내게 홍콩의 모습이 2016년 광화문을 떠올리게 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구나.

 

 


[홍콩 공항을 가득 메운 시위대] 사진=가디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거리만큼이나 내용이 복잡하게 느껴졌다. 일국양제라면 하나의 나라에 두개의 제도인데, 범죄자 인도법은 왜 중국으로 범죄자를 송환하지? 행정부가 두 개라서 그런가? 그럼 두개의 국가인가? 무지한 질문이 내 안에서 쏟아졌다. 바쁜 일상 속에서 홍콩에 대한 질문은 답을 얻지 못했다고 핑계를 댔다. 하지만 마음 속에 개운하지 못한 뒷맛은 남았다.

 

* 브릭 헨지(Brick Henge)

 

10월, 홍콩 경찰이 실탄을 발사한다. 그동안 시위 장면을 공유하던 사람들이 충격적인 장면들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혼절한 부상자를 곤봉으로 폭행하며 끌고 가는 경찰의 모습, 흐르는 피를 닦을 새도 없이 사람들을 부축하는 “경계하지 않으면 다음 차례가 될 것(Be Aware or Be Next!)”라는 메시지를 담은 홍콩 이공대학의 벽과 같은 메시지들. 의문의 시신들이 바다에서 발견되었다는 증언과 실종자를 찾는다는 메시지. 어디서 본 것 같은 사건들이었다. 역사에서 배웠던 1980년의 광주가 떠올랐다.

 

 

 

[이공대학 벽에 스프레이로 홍콩 시위대가 남기고 소셜미디어로 공유한 글. 

“세상 사람들에게. 중국 공산당은 당신의 정부에 침입할 것이고, 중국 기업의 자본은 여러분의 정치적 입장에 간섭할 것이다. 그렇게 중국은 여러분의 나라를 마치 신장에게 했던 것처럼 약탈할 것이다. 경계하지 않으면 다음 차례가 될 것이다” 라고 적혀 있다.]

 

국내에서도 대학가를 중심으로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가 붙는다. 11월이 되면 중국 유학생들이 대자보를 훼손하거나 뜯어내고 “중국 내부 문제다”, “한국인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곳곳에서는 말다툼이 벌어졌다. 말다툼을 넘어 폭행으로 번진 일도 있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중국은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식의 압력의 수위를 계속해서 넓혔다. 차를 타고 달리면 한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장갑차와 육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얘기, 직접적인 무력개입이 가능하다는 얘기, 더 이상 도발하지 말라는 협박에 가까운 경고까지.

 

 

홍콩의 시민들이 세운 '브릭 헨지'. 사진=가디언

 

홍콩의 시민들은 벽돌로 장갑차의 진입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트를 세웠다. ‘브릭헨지(Brick Henge)’라고 부르는 이 벽돌은 기껏해야 발목 높이 정도로, 실제로 장갑차가 투입된다면 속도를 늦출지언정 진입 자체를 막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시민들은 유사시에 벽돌을 던지며 저항할 수 있도록, 말 그대로 결사항전을 준비했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이공대에 마지막 방어선을 갖추고 끝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400명이 줄이어 체포되면서 이공대가 ‘함락’됐다.

 

* 시민의 가슴에 총을 쏜 경찰

 

결정적으로 <홍콩, 봄>을 기획하게 된 건, 경찰이 시민을 조준하고 가슴을 향해 발포하는 영상이 공유되고 나서였다. 이 일련의 이미지들이 역사로 배웠던 1980년 광주를 떠오르게 했다. 그건 이미 6월에 홍콩에서 울려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 때문일 수도, 아니면 사진으로 보고 배웠던 이미지와 홍콩의 지금이 겹쳐 보이기 때문일수도 있다.

 

무장하지 않은 빈손의 시위대에게 실탄을 발사하는 경찰. 사진=유튜브 클립 캡처

 

11월 24일, 홍콩에서 구의회 선거가 있었다. 홍콩 반환 이래 여섯번째로 치러진 구의회 선거는 범민주파의 최초 과반 확보로 이른바 ‘친중파’의 참패로 끝났다. 총 450여석 중 범민주파의 의석은 388석이다. 하지만 행정장관은 아직 바뀌지 않았고, 범죄인인도법을 포함한 시위대의 의제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시위가 멈춘 지금도, 중국은 홍콩에 대한 압박을 풀지 않고 있다.

 

이 즈음, 함께 독립만화 플랫폼 사이드비를 운영하는 성인수 작가와 홍콩을 주제로 만화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논의했다. 모든 이미지들이 온라인을 통해 우리에게 왔고, 그들의 메시지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에게 직접 닿았으니 우리도 온라인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눴다. 현실적으로도 홍콩에 직접 가기 어려운 상황이니, 이렇게라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다음은 온라인 공간에서 어떻게 만화를 보여줄 것인가, 어떤 메시지를 전할 것인가 생각했다. 텀블벅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원고료를 마련하고, 작가들에겐 ‘홍콩’이라는 주제와 ‘3 페이지’ 제한을 뒀다. 텀블벅에 참여한 분들께는 17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엮어 책을 보내기로 했다. 

 

3페이지로 제한을 둔 것은, 책으로 묶었을 때 각기 다른 작품이 모여 하나의 책을 만드는 것처럼, 홍콩의 다양한 의견이 모이는 민주주의를 이룩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짧은 작품을 통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 그리고 그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웹을 통해 보는 작품은 스크롤 방식으로,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은 약간 다른 방식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 또, 번역가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부족하지만 만화를 영어로 번역해 온라인에 함께 공개하기로 했다. 홍콩에서 ‘우리의 싸움을 알아달라’고 말했으니, 우리의 응답이 가서 닿으려면 홍콩어로 번역하지는 못하더라도 영어로는 번역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마련된 온라인 전시 <홍콩, 봄>은, 우리가 역사로 배웠거나 직접 겪었던 사람들의 1980년 광주를 살아내고 있는 홍콩의 시민들에 대한 연대의 표시다. 또,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17인의 작가들이 바라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와 홍콩의 문제를 교차해보는 장이기도 하다.

 

불키드 작가의 <누구라도, 그 누구라도>는 홍콩 반환 이후의 역사를 놀랍도록 미려한 필치를 통해 압축했다. 공기 작가의 <발 디딜 틈 없는 곳에>는 그가 들여다보는 주제인 '공간'을 통해 우리가 보는 홍콩의 현재를 그린다. 굄 작가의 <귤>은 연대하는 마음을 전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만화와 만화 속 내용이 겹치면서 메시지가 증폭된다. 불친 작가의 <엔드게임>은 '홍콩'청년이 되어보는 작품 속 체험을 통해 '청년'이라는 키워드로 우리와 그들이 겪고 있는 현재를 교차시킨다.

 

이 외에도 최재훈 작가의 <우리가 함께>, 바지 작가의 <어떤 자유>, 고일권 작가의 <가歌>, MADCAT 작가의 <존경하는 동지 여러분께>, 한수진 작가의 <브릭 헨지>, 이정헌 작가의 <봄은 여전히>, 엘프화가 작가의 <Not Your Story>, 오로휘 작가의 <아주 작은>, Ansso 작가의 <숨>, AYUN 작가의 <풉풉(POOP-POOP)>, 진정 작가의 <떠오르는 것들의 장례식>, Mae 작가의 <나쁜 날씨>, 성인수 작가의 <50홍콩달러>까지, 모든 작품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시선으로 보는 홍콩을 담았다. 만화는 글과 달리 이미지가 함께 전달되는 매체로, 설령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홍콩의 오늘’을 안다면,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정서가 전달될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어 전시는 4월 3일부터 6월 25일까지, 그리고 영어판 전시는 홍콩 중국 반환일인 7월 1일까지로 예정되어 있다. 온라인에서 이 이미지들을 본 기억이 있다면, 부디 이 전시를 한번 보고 널리 알려 주시길 부탁드린다. 여기에도, 이 곳에도 그들과 연대하는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들에게도 마침내 봄이 오기를 바란다.

 

<온라인 초단편 만화전시회 "홍콩, 봄"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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