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의 시대 ②] - 잘 키운 씨앗이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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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3일, 만화의 날 토론회에 앞선 발제에서 청강문화산업대 박인하 교수는 ‘2019년 이후 웹툰 산업의 방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재화를 생산해 유통채널을 거쳐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1차원적인 콘텐츠 판매가 아니라, 하나의 IP를 연결해 수익을 얻는 새로운 형태의 소비, 즉 가치와 경험을 소비하는 시대”가 열렸으며,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콘텐츠가 바로 웹툰이라고 말했다.

 

이제 소비자들은 단순히 콘텐츠를 구매하는 게 아니라, 콘텐츠를 ‘경험’하고 그 경험을 나누고 소비한다. 유튜브에 음원을 공개한 가수들은 오피셜 채널에서 음원 스트리밍 수익을 얻고, 동시에 보다 질 높은 콘서트를 통해 ‘경험’을 판매한다. 음원이라는 IP를 통해 가수들은 음원과 뮤직비디오 스트리밍, 음반 판매와 같은 1차적인 유통뿐 아니라 공연, 소셜미디어 활용 등을 통해 팬들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팬들의 경험이 곧 소비로 이어지도록 유도한다.

 

웹툰계에선 이 말은 작년까지만 해도 ‘곧 다가올 미래’였지만, 2019년에는 현실이 되었다. 카카오페이지는 웹소설 원작의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드라마화를 통해 드라마 시청률, 종영 전까지 VOD 조회수 1백만, 웹툰, 웹소설 방문자 역시 크게 늘어났다며 ‘슈퍼 IP’의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동시에 카카오페이지 역시 다음웹툰과 카카오페이지의 원작 IP를 활용한 영화와 드라마를 선보이고 있다. 네이버웹툰 역시 영상 제작을 맡는 자회사 스튜디오N이 공동제작에 참여한 드라마와 영화를 대거 제작하는 등 IP 비즈니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상화 뿐 아니라 게임화도 활발하다. 2019년 11월 6일 iOS 기준 네이버웹툰 IP 10종을 활용한 게임은 13종이 서비스 중이다. 하지만 성적은 그리 좋지 못하다. 웹툰 IP를 활용해 주목을 받았지만, 대부분이 단순 퍼즐형이거나 SD캐릭터를 활용하고, 확률형 뽑기 시스템을 통한 과금유도 등으로 유저들의 외면을 받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IP를 하나로 묶어 별도의 게임 속 세계관을 만드는 프로젝트들도 진행됐다.

 

 

* 황금알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흔히 콘텐츠 산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하곤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황금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언제, 어떤 작품이 황금알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쌍천만’영화가 된 <신과 함께> 시리즈의 경우 처음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 ‘진기한은 어디 갔느냐’는 기존 독자들의 강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엄청난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미생>에서 이어진 웹툰 원작의 영상화 돌풍은 2019년 <조선로코 - 녹두전>, <쌉니다 천리마마트>, <타인은 지옥이다>(이상 네이버웹툰 IP, 스튜디오N 공동제작), <어쩌다 발견한 하루>, <진심이 닿다>, <좋아하면 울리는>(이상 카카오페이지&다음웹툰 IP) 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모든 웹툰원작 IP가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가령 <덴마>, <신도림>, <마왕이 되는 중2야>등 네이버웹툰의 인기 IP를 모은 모바일게임 <덴신마>는 오픈 이후 활발한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지만, 다른 게임들이 할로윈 이벤트에 열을 올리던 기간 서버 종료를 발표했다. 이전에도 <하이브>등을 원작으로 한 게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웹툰 원작 드라마와 원작 게임의 실패에 가장 큰 차이는 유저들의 눈높이를 착각했다는 반응이다. 아무래도 원작 IP를 가져오면 입소문을 내 줄 원작 팬들이 먼저 찾아오는데, 그들이 찾아와서 즐길 수 있는 토양을 잘못 계산했다는 말이다. 가령 <덴신마>의 경우 오픈 이후 꾸준히 프로야구 경기 중간 광고를 진행했다. 10대~20대 초반을 타겟으로 하는 캐주얼 게임의 유저나 원작 웹툰의 독자들이 네이버TV를 통해 프로야구를 봤을지는 의문이다.

 

드라마의 경우 폭넓은 채널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이 있기도 했지만, 드라마를 주로 소비할 타겟에 맞춰 드라마를 각색하는 과감한 선택을 통해 호평을 받고 있다. <조선로코-녹두전>의 경우 오리지널 캐릭터를 추가하고,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경우 10년이 지난 작품인 만큼 현재의 감각에 맞게 재구성했다. 또한 <어쩌다 발견한 하루>같은 경우 주인공 캐릭터뿐 아니라 등장인물 비중을 변경했음에도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영화의 오리지널리티가 호평을 받는데에는 매체가 다르다는 특성도 있겠지만, 보다 대중적인 매체로의 이식이라는 점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보인다. 반면 모바일게임은 오히려 웹툰보다 타겟이 확실한 과금 유저를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더 좁게 타겟을 가져가서 핵심 유저층을 확실히 공략할 필요가 있었지만, 그들을 매혹시킬 요소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웹툰에서 ‘황금알’을 가져갔다고 해서 반드시 또다른 황금알을 낳는다는 보장은 없다. 아무리 공을 들였다고 해도 사용자-소비자-독자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면 IP로서 환영받지 못한다. 단순히 ‘재밌는 작품’이 아니라, 내게 어떤 경험을 전해줄 수 있는지가 콘텐츠 소비의 기준이 되는 시대가 되면서 작품 안팎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들이 늘어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잘 즐기는 사람이 잘 만드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하나의 IP를 통해 내가 어떤 즐거움을 얻었는지를 공유하며 다른 사람에게 ‘영업’하는 일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IP 비즈니스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이 시장은 알아서 먹이를 먹고 아침이면 황금알을 낳아놓는 거위가 아니라, 물도 주고 햇볕도 쬐어주고 온도와 습도를 신경 써야 하는 씨앗에 가깝다.

 

 

* 새로운 가능성, 어떻게 열릴까?

 

이제 웹툰 시장은 크게 세 부류로 분화될 것으로 보인다. IP비즈니스를 통해 연결된 콘텐츠 경험을 제공하는 티어 1 플랫폼, 티어 1 플랫폼에 콘텐츠를 유통하고 IP 확장을 노리는 등 만화 유통 뿐 아니라 IP확장을 통한 수익을 올리는 티어 2 업체. 여기에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플랫폼, 유통망을 가지지 못한 전문 프로덕션이나 스튜디오 등 제작사가 포함된다. 그리고 IP 확장이 아닌 웹툰-만화 자체를 창작해 판매하는데 목적을 두는 인디시장인 티어 3으로 구분이 필요하다. 티어 3은 비교적 규모가 작지만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작가들의 독립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포스타입, 딜리헙과 같은 오픈 콘텐츠 플랫폼이 그것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패트리온(Patreon)처럼 창작자가 유튜브, 일러스트, 만화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채널을 개설하면 유저들이 후원하고, 페이지 제공, 워크샵 지원, 프로모션 제공 등 다양한 혜택에 따라 3단계로 나누고 수수료를 차등 지원하는 시스템을 통해 유저들이 자유롭게 창작자들을 후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동시에 창작자들이 후원자들에게만 제공하는 특별 혜택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구독 모델 등 다양한 방법의 후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진 초기 단계다. 지난 수년간 아마추어 플랫폼으로 인기를 얻었던 포스타입과 2019년 4월 오픈한 딜리헙이 가장 앞서 있다. 유료 판매는 물론 구독모델을 도입해 창작자들이 후원을 기반으로 작가주의적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해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웹툰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독립출판만화 시장 역시 조금씩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작품 판매에 주 목적을 두고 있다곤 했지만, 작가가 콘텐츠를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결국 이 시장 구분은 유통-기획 단계에 따른 차이일 뿐, 가능성은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콘텐츠 비즈니스가 가진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배경은 결국 안정적인 창작환경이다. 11월 3일, 만화의 날에 네이버웹툰 김준구 대표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은 플랫폼들이 고민할 테니, 작가님들은 작품 창작에 몰두해 달라”고 당부했다. 티어 1 플랫폼에 해당하는 네이버웹툰은 작가들의 작품을 안정적으로 수급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딜리헙의 박유진 대표 역시 “딜리헙은 6%의 수수료를 제외하면 작가님들께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최적의 방식으로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앞으로도 작가님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린 브랜딩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티어 1, 2, 3의 고민은 같다. 보다 실력 있고 창의적인 작가들을 어떻게 모집하고, 그들에게서 작품을 안정적으로 제공받을 것인가.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가치를 브랜딩 할 것인가. 이젠 작가들도 이 고민을 해야 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작가들은 각자의 목표 또는 작품에 맞는 시장을 고를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당연히 작가는 자신이 뛰어들고자 하는 시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계약을 통해 작품 배급과 IP 관리를 위임하는 티어 1-티어 2 시장에서는 적극적인 비즈니스를, 독립시장인 티어 3 시장에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이며 지속 가능한 관심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작품의 씨앗은 작가다. 또, 작품은 다시 IP의 씨앗이 된다. 이 틀 안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앞으로 웹툰 비즈니스의 핵심이 될 것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재미있는 만화’, 그리고 ‘재미있는 웹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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