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협이 발간한 보고서는 그동안 잃은 신뢰를 복구할 수 있을까?

 

대한출판문화협회가 “구름빵 사건이 남긴 숙제들”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발행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구름빵> 사태가 공론화되는 과정이 적절치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구름빵> 사태가 출판사와 저자 관계를 바라보는 프레임으로 작동, 결과적으로 문체부의 저작권법 전부개정안과 같은 결과로 나타나 정부가 계약에 개입하겠다는 결과를 낳았다고 봤습니다. 이 보고서는 출협, 한국검인정교과서협회, 한국아동출판협회가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출판계는 그동안 <구름빵> 뿐 아니라 많은 분쟁은 물론 스스로 발표한 “통합 표준계약서” 문제, 도서정가제 논란 등으로 신뢰를 계속해서 잃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보고서에선 과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에디터가 한번 살펴보고 의미를 해석해봤습니다.
* 4,400억원은 핵심이 아니다
보고서에서는 출판사는 관행에 따라 일을 했고, 잘못만을 부각하는 언론에 의해 문제가 사실과 다르게 전해졌다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출판사가 4,400억원을 벌었다”는 말은 허위라면서 그 말이 가장 크게 보도되어 실제로는 그만큼의 돈을 벌지 못한 출판사가 피해를 보게 됐다는 식입니다. <구름빵> 사건의 핵심은 계약이 사인간의 합의이기 때문에 이후에 양측의 의견이 달라지더라도 합의된 문서를 우선시하는 법리적 해석이지, “4,400억원”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숫자의 돈이 아닙니다.

물론,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는데에 4,400억원이라는 숫자가 역할을 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법리적 판단에 있어 돈의 숫자보다 중요한 건 법리적 해석의 정합성입니다. 판결문을 들여다보면 법원은 계약의 불공정성이 아니라 “계약서상 합의한 내용”을 중심으로 원고인 작가의 주장이 받아들여질만 한가를 보았습니다.
계약서 상에서 “저작권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어 사측이 저작재산권을 활용해 2차적 저작물 작성을 허가하는 것은 유효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원작자의 지위가 변경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원에서는 ‘계약한 내용을 어기지 않았다’고 본 것이지, 계약 자체가 불공정한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 자율적으로 못 했으니 개입하겠다는 것
자, 그러면 이 계약이 불공정하지 않은 계약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출협에서도 불명확한 계약 관행인 ‘매절 계약’을 근절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이번에 논의중인 저작권법 전부개정안에 포함된 ‘추가보상청구권’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도 보고서를 통해 전했습니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뒤에 나오는 말일 겁니다. 매절계약은 앞으로 근절해 나갈테니, 정부는 계약에 개입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문제가 왜 생겼는지를 간과한 것 같습니다. 발간사에는 “출판사들이 노력하고 변화해야 할 것이 있었을 수 있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구름빵> 문제를 비롯한 출판계의 갈등을 축소하고, 한편으론 “저작자와 출판사 모두 발전상황에 걸맞은 제도적, 법적 지원과 정비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발전상황에 걸맞은 제도가 필요하다면서 어떤 제도는 시기상조라고 하면, 발전 했다는 건지 안 했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구름빵> 사건에 대한 반성과 재발방지를 위한 자성 촉구보단 ‘매절 계약 관행’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곧바로 <구름빵> 사건의 보도행태와 추가보상청구권 문제를 다루는데 대부분을 할애합니다. 자율적으로 계약을 맺어야 할 주체 중 한쪽이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면, 그 조건을 맞춰주기 위한 도구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자는 것이 이번 저작권법 개정안의 취지입니다. 물론 아직 시작단계로 수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이 과도하게 개입한 잘못된 선례’라거나, ‘우리에게 낯선 저작권 계약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출협의 변론은 너무 낡았습니다.
* 출판계가 만든 표준계약서, 신뢰 잃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신뢰를 잃은데에는 출판계가 자정하겠다며 내놓은 표준계약서가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스스로 발표한 표준계약서에 계약기간을 10년으로 하고, 법률 전문가와 정부 모두에서 2차적 저작물 등 별도의 계약은 별지분리를 권고하고 있는데도 하나로 통합해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저자에게 수정을 무한히 요청할 수 있는 조항이나 웹툰, 웹소설과 영화 등을 포함하는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모두 포괄하는 등 그 외의 독소조항도 많이 지적됐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보고서에서는 “매절 계약은 잘못된 관행”에서 그치지 않고 “저작권법 개정은 시기상조”라면서 추가보상청구권 도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애초에 출협의 말대로 계약이 ‘동등한 주체간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계약’이라면, 추가보상청구권을 쓸 일도 없지 않을까요?
출협이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지원사업에 표준계약서 사용 의무화는 비단 출판만이 아니라 다른 콘텐츠 분야에서도 똑같이 진행중인 일입니다. 최소한 지원사업을 받으려면 계약서는 표준계약서를 활용해 공정하게 작성하라는 취지의 정책입니다. 만화계도, 공연예술이나 영화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왜 유독 출판계에선 ‘동등한 합의’를 위해 계약기간 등을 공란으로 비워놓은 표준계약서를 쓸 수 없다고 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결국, 계약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상대방을 믿고, 계약 내용에 대한 양측의 이해가 같다는 전제하에 서명으로 동의하는 것을 계약이라고 말합니다. 계약은 결국 사인(私人)간의 합의이기 때문에 <구름빵> 사례처럼 불공정을 따지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실, 추가보상청구권 문제가 나왔을 때 출판계는 그만큼 떨어진 신뢰를 복구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먼저 냈어야 하지 않을까요?
도서정가제를 이야기할 땐 책은 문화 공공재라고 대응했다가, 계약 문제가 불거지면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간의 합의라고 이야기하면서 보고서에 “구름빵은 저자와 출판사를 보는 프레임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국가의 개입을 낳았다”라는 주장을 한다면 한동안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방법은 요원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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