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E-SIGHT] “나단이라고 불러줘” 내일의 나를 그려볼 수 있다는 것

<나단이라고 불러줘>, 카트린 카스트로, 캉탕 쥐시옹, 상어출판사, 이나래 옮김. 각권 20,000원. 표지출처 텀블벅 펀딩 페이지
어떤 것들은 너무 흔해서 특권이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또, 그런 것들 중에는 얻는데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고 오해하는 것들도 있다. 그 중에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도 포함되어 있다. 모든 아이들이 꿈을 꾸고, 내일을 그려보는 것조차 특권이 되는 사회는 누가 들어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오늘을 견뎌내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가난, 가정폭력부터 학교폭력과 같은 요인들이다. 하지만 이런 외부적 요인들 외에도 ‘내일’을 그릴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은 많다.
상어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이나래 번역가가 번역을 맡은 <나단이라고 불러줘>(카트린 카스트로&캉탕 쥐시옹 지음)는 ‘정상’이라는 기준으로 평범하게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단은 아주 평범한 청소년이다. 동생과 싸우기도 하고,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연인에게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다만 나단은 ‘어른이 되기 싫다’고 말하고, 거울 속 자신에게 역겹다고 말한다. 나단은,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를 강요받은 사람들은 결국 꽁꽁 숨어서 밖에 드러나지 않고,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만 ‘일반적’, 혹은 ‘정상’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인다. 이 카테고리는 생각보다 굉장히 촘촘하다. 이성애자, 비 장애인, 빈곤층이 아니면서 도시에 거주하는 청-장년층, 양친이 모두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 이혼하지 않은 가정을 이루고 있을 것. 여기에 시스젠더(생물학적 성과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를 포함해 수많은 ‘조건’들을 붙일 수 있다. 이 조건들은 배타적이고, 차별적이며 폭력적이다.
<나단이라고 불러줘>에서 나단은 2차성징이 일어나면서 ‘성별 불쾌감’으로 번역되는 젠더 디스포리아(Gender Dysphoria)를 겪는다. 나단은 거울을 보고 “너 역겨워”라고 자신에게 말한다. 거친 이미지로 표현된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어 떼어내는 장면이나, 자해하는 장면을 통해 나단이 겪고 있는 상황이 전해진다.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 자신을 납득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 걱정 없이 내일을 그려볼 수 있는 건 큰 특권이 된다. 나단은 상담을 받으러 간 자리에서 “나중에는 뭘 하며 살 것 같니? 직업 말이야”라고 묻는 상담 선생님께 “모르겠어요. 어른 되기 싫어요.”라고 말한다. “네가 어른이 된 모습이 그려지지 않니?” 라는 질문에는 “사람들이 날 있는 그대로 봐주기를 바랄 뿐이예요. 남자요.”라고 답한다.
그나마 다행히도 나단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단은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운이 좋게도 지지해주는 부모와 동생, 그리고 나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운이 좋다’는 것이 생존을 결정짓는 요소라면, 인류는 야만에 남겨진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 작품을 보면서 2020년의 우리는 어떤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범주를 넓혀 왔다. 역사가 증명하듯, 인간은 앞으로도 인간의 범주를 넓혀 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주변의 ‘나단’을 나단이라고 부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수많은 나단들이 내일을 감히 꿈꾸지도 못하도록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묻게 됐다.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에 등장한 혐오세력이나, 존재를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데 사용하는 사람들이 떠넘기는 절망감은 다행히, 한편으론 아쉽게도 이 책에는 그려지지 않았다.
<나단이라고 불러줘>는 주인공 나단의 선언이자, 트랜스젠더의 외침이다. 초반 책 속에서 나단은 “다시는 웃통을 벗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마지막에는 웃통을 벗고 수술 자국을 선명히 드러내며 “내 이름은 나단 몰리나야”라고 말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존재 자체만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을 기다리며. <나단이라고 불러줘>는 오프라인 독립서점, 온라인에서는 유어마인드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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