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cm 거대펭귄 펭수에게서 찾은 콘텐츠 제작의 비결

 

캐릭터 이미지 출처: 자이언트 펭TV 공식홈페이지(EBS)

 

 

키 210CM, 거대 펭귄 펭수의 인기가 뜨겁다. 22일(금) 오후 현재 구독자는 83만명, 지난 7월 개설한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20만명이다. 지난 봄에 처음 등장한 펭수의 인기 비결은 크게 거침없이 말하는 직설적인 화법, 탄탄한 세계관, 그리고 B급 감성으로 꼽힌다. 탄탄한 기획에 펭수의 연기력과 예능감 넘치는 편집이 더해져 이런 성공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런 글 특: 이미 늦었음 (출처: 유튜브 자이언트 펭TV)

 

 

사실 이런 분석글은 이미 넘친다. 물이 넘치는 상황에서 노를 저어봐야 늦은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이야기보다 유튜브에 올라온 자이언트 펭TV 영상을 모두 보면서 느낀 펭수의 장점을 꼽아볼까 한다.

 

 

* 팬과의 소통은 물론 팬끼리 소통까지

 

펭수 영상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깔깔거리다 캡처를 하게 된다. 이렇게 캡처된 이미지는 커뮤니티와 메신저를 타고 ‘짤방’으로 활용된다. 온라인 콘텐츠 시대, 인터넷 밈(Meme)을 통해 펭수를 소비하는 경우도 많다. 자이언트 펭TV에서 가장 조회수가 높은 콘텐츠는 바로 ‘이육대 1부’ 영상이다. 이 영상은 가장 기수가 높은 뚝딱이가 짜잔형에게 “짜잔아, 너 몇기더라?”라고 묻는 장면이 캡쳐되어 짤방으로 돌면서 인기를 탔다. ‘펭수 영상은 안 봤어도, 짤방은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설의 탄생. ‘뚝딱좌’를 낳은 짤방. 이렇게 유튜브 캡처 영상을 연속으로 공유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출처: 유튜브 자이언트 펭TV “이육대 1부”)

 

펭수를 활용한 이모티콘 역시 ‘움짤’형태로 영상에서 그대로 따온듯한 이미지로 만들어졌다. 펭수가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 눈에 띄던 ‘짤방’의 활용은 웹툰이 인터넷 문화를 이끌던 시기와 닮아있다. 기획이나 미디어 노출과는 관계없이 입소문을 타고 전파되는 짤방은 지금의 펭수 팬덤을 만드는 기초가 됐다.

 

여기에 펭수의 ‘저세상 드립’을 모아놓은 영상, 복습 영상이 만들어졌다. 말하자면 ‘펭수 입덕 다이제스트’ 영상인 셈이다. 펭수의 캐릭터성과 짤방이 합쳐지고, 영상 콘텐츠의 파급력이 더해지면서 펭수의 인기는 순식간에 치솟았다.

 

 

* ‘덕질’ 할 수 있는 특별한 대상

 

여기에 ‘할 말은 하는’ 확실한 컨셉이 더해져 팬들에게 ‘펭수는 펭수일뿐’이라는 생각이 더해졌다. 댓글에서 ‘인간 아니냐’는 말을 하면 팬들이 ‘눈치 챙겨’라는 댓글로 응답하는 식이다. 말하자면 김난도 교수가 참여한 <트렌드 2020>에서 내년도 트렌드로 이야기한 ‘멀티 페르소나’와도 닿아 있다. 팬들에게 펭수는 ‘인형탈을 쓴 사람’이 아니라, ‘펭수’라는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펭수는 현실 세계에서 이해관계가 얽힌 인간이 아니라, 가상의 존재지만 ‘덕질’할 수 있는 대상으로 거듭난다.

 

 

 

펭수는 그저 펭수다. (출처: 유튜브 자이언트 펭TV)

 

 

이건 래퍼 매드클라운과는 다른 ‘마미손’의 등장이나, 그보다 앞섰던 3류 만화가 이말년과는 다른 ‘침착맨’의 등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을 바탕으로 팔로워를 모으기보다, 그들의 문화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다른 자아를 앞세워 팬덤을 확장시킨다. 그 자체로 팬들에겐 놀이가 되고, 그것이 또 전파되며 유머코드가 되기도 한다.

 

 

* 교육방송 티 내지 않는 교육방송 콘텐츠

 

아무리 펭수가 유튜브를 기반으로 인기를 얻었다고 해도, 뿌리는 EBS에 두고 있다. 실제로 자이언트 펭TV의 영상을 보면 초반 몇화에선 오프닝 음악이 전부 재생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건 EBS에서 TV를 통해 방영하던 포맷과 닮아있다. 하지만 초반 몇 화가 지나면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유튜브 영상과 비슷하게 빠른 호흡으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유튜브에 맞춰서 콘텐츠의 호흡을 바꾸는 등 교육방송 콘텐츠 티를 벗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지만, 펭수의 콘텐츠가 ‘교육방송’임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이슬예나 PD는 10살 펭귄이라는 설정에 착안, 명문화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보다 10살 아이들이 실수를 하고, 조언을 받거나 경험을 통해서 수정해 나가도록 했다. 

 

EBS의 다른 캐릭터처럼 어른이 아이의 옷을 입거나, 어린이가 정해진 대본을 연기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배워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때문에 ‘어린이의 모습을 한 어른’, 또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라는 키워드와 결합되면서 2030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자막이나 대사 등을 활용해서 다양성을 강조하는 측면도 눈에 띈다. ‘모든 펭귄은 특별합니다’라는 자막에서 ‘특별한’에 무지개색을 넣는다던지(무지개 깃발은 성소수자의 상징이다), 펭수가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장면, 남자 옷과 여자 옷을 모두 입는 장면 등은 최근 트렌드로 꼽히는 ‘젠더 프리’와도 이어진다.

 

 

 

보건복지부 유튜브에 올라온 펭수 가족사진. 팬들은 ‘정상가족 프레임’을 강요하지 말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출처: 보건복지부 유튜브 채널)

 

 

최근 보건복지부와 콜라보한 영상에서는 보건복지부에서 선물로 준 가족사진을 보자마자 ‘저 동생 없는데요?’라고 말한 걸 두고 일부 팬들은 ‘펭수에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지 말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필요한 이야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교육방송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펭수를 통해 이야기하고, 그것도 아주 효과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펭수는 단순히 EBS가 가진 적자를 메꿔줄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의 세상에 대한 인식과 지평을 넓혀주는 동시에 덕질할 수 있는 캐릭터다. 가르치려 들지 않으면서도 교훈을 주는 한편, 속 시원한 말로 대리만족과 ‘사이다’를 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교육방송이 가져야 할 덕목을 가지고 있는 놀라운 콘텐츠가 바로 펭수다. 이런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EBS의 제작진은 단어 선택까지 하나하나 신경쓰고 있다고. 편집과 자막을 넣는데도 ‘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인식하면서 단어를 고르고, 반응을 살핀다고 밝혔다. 이런 고민은 ‘가족’ 타겟의 콘텐츠를 만들다 보니 당연한 일이라고 이슬예나 PD는 밝혔다. 

 

웹툰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웹툰 플랫폼이 가지는 막대한 파급력에 비해 콘텐츠를 선보일 때의 책임감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때문에 웹툰계에도 펭수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에겐 단순히 말초적인 자극을 주기 때문에 재미있는 콘텐츠가 아니라, 창작자와 제작자의 깊은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 콘텐츠가 필요하다. 정말 다행인 점은, 최근 지원사업을 통해 발굴된 웹툰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목할 만한 감수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펭수의 성공을 통해 ‘그런건 안 팔린다’는 이야기로 가로막기보다, 다양한 콘텐츠의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콘텐츠의 파급력까지 생각해 만들어내는 펭수는, 웹툰을 만들고자 하는 작가와 제작자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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