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툰의 진화과정 ② ? ‘전문 분야’ 생활툰, 그리고 사회 담론의 첨병

지금까지 일상툰이 21세기의 인터넷 문화와 호응하며 성장했다고 이야기했다. 인터넷 문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일상툰은 개그만화로 발전, ‘병맛’만화를 낳았고, 보다 자신의 삶에 집중한 만화는 ‘생활툰’으로 분화했다. 그 중에서도 2010년대의 가장 큰 변화는 웹툰 플랫폼이 다수 등장하면서 미디어믹스의 중심 콘텐츠로 웹툰이 성장했다는데 있다. 그렇다 보니, 생활툰 역시 진화를 요구받았다. 오늘은 생활툰이 어떤 진화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살펴본다.

전문분야 생활툰의 등장

 

일상생활을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인 생활툰은 당연히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상을 캐치해 드러내는 장르기도 하다.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까지는 여행과 관련한 생활툰이 눈에 띄는데, 이는 디지털카메라의 보급, 싸이월드 등 초기 SNS의 유행과 함께 해외 저가항공 노선은 물론 2011년 국내 저가항공사 해외노선 취항과 맞물린다. 또한 네온비 작가의 <결혼해도 똑같네>(2012)는 결혼은 했지만 여전히 연애하던 시절과 똑같이 살고 있는 부부의 모습과 ‘아이는 언제’라고 묻는 외부의 시선에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그리면서 결혼-출산-육아로 이어지는 일종의 관습이 깨지던 당시 시대상을 보여준다.

 

 

네온비 작가의 <결혼해도 똑같네>

 

또한 네온비 작가의 <다이어터>역시 작가 본인이 다이어트를 했던 경험을 녹여 그려낸 작품이어서 생활툰이 여러가지 형태로 분화하던 초기 형태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2013년은 레진코믹스가 등장하는 등 웹툰이 본격적으로 산업으로 태동하던 시기다. 다양한 플랫폼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했던 2013-2015년, 플랫폼은 늘어났지만 그 전까지 주류를 이루던 ‘도시 거주자의 일상’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생활툰은 점차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은 트래픽 유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활툰은 이 시점에서 한번 더 진화를 시작한다. 보다 전문적인, 또는 일상의 시각을 비트는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작품들의 등장이다. 특히 2014년은 이런 ‘전문 분야 일상툰’의 약진이 눈에 띄던 해였는데, 바로 마일로 작가의 <여탕보고서>와 불친절 작가의 <500만원으로 결혼하기>, 김환타 작가의 <유부녀의 탄생>이 2014년에 연재를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생활에서 사용했던 물건을 소재로 한 야미 작가의 <일단 질러! 질렐루야>도 이때 연재를 시작했다.

 

<여탕보고서>는 작가 본인이 목욕탕에서 직접 겪은 일과 사연을 모아 작품으로 만들었고, <500만원으로 결혼하기>는 작가 본인이 예산 500만원으로 결혼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또한 <유부녀의 탄생>역시 결혼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다음, 이제는 육아까지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 작품이다. 이들 작품들은 작가 본인이 화자로 등장해 직접 경험했던 이야기를 토대로 정보를 전달한다. 그러니까, 생활툰은 본인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필요한 정보’를 담거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자신의 경험에 녹여 전달하는 매체가 되었다.

 

특기할만한 점은, 일상 전반을 다루던 ‘일상툰’ 시절과 비교하면 작가의 개인 신상정보를 숨길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개발되었다는 점이다. 서나래 작가가 <낢이 사는 이야기> 후기에서 밝혔다시피, 일상툰 작가에게 주어지는 도덕적 잣대는 엄청나게 높다. 공교롭게도 이 때문에 일상을 다루던 만화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생활툰, 여성의 목소리를 담는 매체가 되다

 

그리고 등장한 기념비적인 작품이 있다. 바로 단지 작가의 <단지>다. 생활툰이 자신의 생활에서 겪었던 일을 그린다는 점을 활용해 주로 결혼 등 일상과 밀접하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개인 편차가 큰 이벤트를 그렸던 것에 반해 <단지>는 생활툰이 가진 자기고백적 서사의 힘을 최대한 활용했다. 자신이 겪었던 가정폭력을 이야기하고, 거기서 벗어나 독립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인 <단지>는 생활툰이 한단계 더 진화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여기에 우리나라를 뒤흔든 “페미니즘 리부트”가 더해졌다. 이 사건은 생활툰을 그리는 작가들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는 생활툰의 화자는 작가였지만, 동시에 ‘도시 생활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낢이 사는 이야기>와 <나이스진타임>의 경우 화자가 여성일 뿐 남녀노소 누구나 작가에게 자신을 투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지> 이후, 그리고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새로 등장한 작품들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2017년 연재를 시작한 민서영 작가의 <썅년의 미학>, 2018년 연재를 시작한 곤 작가의 <예민보스 이리나>, 그리고 쇼쇼 작가의 <아기낳는 만화>는 모두 작가, 또는 작가가 주변에서 획득한 경험을 토대로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화자는 모두 “여성”이다. 기존의 생활툰이 사회적 담론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그래도 괜찮아”라며 위로하거나, “그래도 살아야지”라고 말하며 ‘힐링’을 이야기하거나 은근히 드러내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최근의 생활툰은 보다 적극적으로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드러내는 한편, 작가가 여성이기 때문에 겪은 경험을 드러내는 걸 피하지 않는다.

 

이는 여성 작가들이 본인의 정체성을 새로 발견하고, 독자들 역시 사회 속에서 본인의 정체성을 새로 발견해 나갔기 때문으로 파악할 수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전까지는 웹툰의 독자로 파악되지 않던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새로운 독자로 ‘발견’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흐름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지속 가능한지는 아직 미지수다. 독자들이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동시에, 웹툰 플랫폼의 관점에서는 선택지가 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여전히 미디어믹스가 대세인 상황에서 생활툰은 미디어믹스가 어려운 장르다. <썅년의 미학>이나 <식물생활>등이 웹드라마로 제작되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긴 하지만, 전문 생활툰은 사실 미디어믹스가 어렵다. 또한, 완전히 일상을 다루는 생활툰의 경우 유튜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브이로그(VLOG)와 겹치는 부분이 있고, 전문분야 생활툰은 비슷한 내용을 다루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때문에 플랫폼을 통해서 연재되기엔 어려운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사실은 생활툰이 아니지만 생활툰의 형식을 빌린 <며느라기>

 

 

그래서 생활툰은 매체를 넘나들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생활툰의 특성을 활용해 가상의 캐릭터를 활용해 SNS와 접목시킨 <며느라기>가 등장한 것은 눈여겨 봐야 한다. 소위 ‘인스타툰’으로 불리는 만화들 대부분이 생활툰의 형식을 띄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만하다. 생활툰은 매체와 요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매체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여성 작가들의 약진이 눈에 띄는데, <다이아리>의 이아리 작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플랫폼에서는 이미 다루었거나, 다루기 힘든 주제를 다루는 생활툰의 진화는 생활툰을 단순히 인터넷 문화에 수동적으로 호응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동안 가려졌던 존재인 여성을 화자로서 재발견하고 재조명하는 수단으로서도 작동하게 되었다. 또한 단순히 작품을 통해 실제 사건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담론이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대중의 담론장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아기낳는만화>의 경우 출산과 육아에 대한 논의가 웹툰 밖으로 이어지게 됐고, <며느라기>는 명절마다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됐다.

 

지난 20년의 웹툰의 역사와 발걸음을 함께한 생활툰은, 다른 장르보다 빠르고 역동적으로 변화해온 장르다. 애초에 그 시작이 커뮤니티 게시글에서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자신을 화자로 등장시키거나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웹툰이 가진 매체적 특징이 가장 크게 발휘되는 장르인 생활툰은 모바일 시대를 맞아 날개를 달았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컷 형태로, 각종 게시판에서는 스크롤 형태로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꿔가며 연재하는 작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플랫폼이 대형화되고, 산업으로써 웹툰이 각광받으면서 미디어믹스에 불리한 생활툰은 플랫폼 밖으로 밀려났지만, 오히려 소셜미디어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신변잡기적 일기부터 사회담론의 첨병까지, 진화를 거듭했던 생활툰의 다음 목적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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