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눈부신 연대가 만들어낸 값진 승리” – 7월 12일 레진코믹스 사과문 발표에 대하여

 

 

칼럼) “눈부신 연대가 만들어낸 값진 승리”

– 7월 12일 레진코믹스 사과문 발표에 대하여?

 

2018년 7월 12일, 레진코믹스 블로그에는 ‘레진님’ 한희성 대표의 사과문이 올라왔다. 레진은 여러모로 웹툰판의 뜨거운 감자였다. 전면 유료화 플랫폼 선언을 하고도 살아남은 최초의 웹툰업체였다. 웹툰 시장을 선도하고 바꿀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2015년의 MG도입 당시 대나무숲 이후 매년 터져나오던 소문 아닌 소문들과 각종 루머들이 모여들어 고이던 곳 또한 레진코믹스였다. 2016년에는 거의 모든 플랫폼들과 마찬가지로 예스컷/노쉴드를 주장하며 작가들에 대한 검열을 주장하는 자칭 독자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움직임을 보였고, 플랫폼에서 연재하는 작가의 안위가 후순위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수많은 루머들이 실체로 드러난 것이 작년 웹소설 졸속종료였다. 모습을 드러낸 실체가 구체화된 것이 2017년 9월부터 이어진 지체상금 및 해외 정산금 이슈와 블랙리스트 의혹이었다.

 

들끓는 작가와 독자들의 분노는 시위로 이어졌다. 올해 1월 11일에 있었던 시위에는 150여명의 사람이 모였다.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남성 작가나 독자의 비율은 1/10이 채 되지 않았다. 혹한의 추위에도 한 목소리로 작가 착취와 블랙리스트를 통한 부당대우 등에 대한 개선과 한희성 대표 명의의 사과를 요구했다. 그리고, 레진은 간담회를 열었다가 취소했다가 다시 여는(?) 기행을 선보였다. 그마저 열린 간담회에서도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는 범위에서 변명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1월 30일, ‘웹툰 생태계 조성을 위한 토론회’가 있던 날 레진은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한 미치, 은송 작가에게 총합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만협에서는 재빠르게 후원계좌를 열었고, 2시간 18분만에 2천여만원이 모였다. 연대하는 작가와 독자들의 분노가 수치로 등장한 첫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레진코믹스 규탄 2차시위가 2월 6일 열렸다. 한 여름인 지금 생각해도 뼈가 떨리도록 추운 날, 100여명의 작가와 독자들이 다시 모였다. 당시의 주된 구호중 하나는 “나도 고소하라”였다. 레진 규탄연대와 레진코믹스가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 같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시간은 지난하게 흘렀다. 몇가지 사건을 빼고 주요 이슈로만 타임라인을 정리하는데 이렇게 지면을 할애해야 할 정도로 길고 긴 싸움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레진코믹스의 사과문이 올라왔다. 첫번째로는 미치, 은송 작가에 대한 소송을 취하하고, 레진 규탄연대는 문화부, 공정위등에 제기한 민원을 취소하며, 지체상금 전액을 지연이자를 더해 작가에 환원하며, 회사와 작가연대가 상호발전을 위해 힘을 합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내용을 좀 더 깊게 뜯어보고자 한다.

 

먼저 한희성 대표가 직접 나섰다. 이건 고무적인 일이다. 웹툰계에서 대표의 심기에 따라 사업이 엎어지고, 작가가 직접 수천개의 악플을 상대하고, 계약을 해지당하는가 하면 프로모션에서 배제되는 등 불이익을 겪는 일들을 수없이 봐왔지만 대표가 직접 나서서 해명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사과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문체부, 국회, 서울시, 공정위 등 다양한 외부기관의 말씀을 들으며”라는 문장이었다. 1월에 문체부가 발표한 ‘합법적 블랙리스트’ 1호로 선정된 레진코믹스가 실질적인 압박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두번째 눈에 띄는 문장은 “감정적으로 격앙된 일부 경영진이 일부 작가님을 프로모션에서 누락하라는 말을 한 부분을 인정합니다”라는 부분이다. 소위 ‘블랙리스트’가 존재했음을 인정하는 내용이다. 먼저, 당시 유출된 내부 문건에서 “레진님”이라는 문구가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레진님’이라는 말을 아무나 쓸 수 있느냐는 작가의 질문에 레진코믹스의 임원은 “우리 회사는 그래도 된다”고 답했다. 때문에 ‘레진님’이 실존하는 인물이긴 하는지, ‘레진님’이 사실은 아무 힘이 없는 것 아닌지 등 다양한 추측이 난무했다. 이번 사과문에서는 한희성 대표가 직접 지시했는지 여부는 부정하며 일부 경영진의 일탈행위 정도로 무마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그 다음 눈에 띄는 부분은 지체상금(지각비) 환원 부분이다. “2015년 8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징수한 약 3억 4천만원”이라는 부분이 눈에 띈다. 약 2년 반동안 3억 4천만원을 징수했고, 이제 지연이자를 포함해 환원하기로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당사자간 합의에 의한 약정이자가 우선된다. 때문에 지연이자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법정이자를 따르면 민법상 채무에 대해 일반적으로 연 5%의 이자가 붙는다. 이 3억 4천만원은 어시스턴트 비용과 스케치업 구매비용 등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작가들에게 착취한 금액이다. 

 

레진은 웹툰뿐만 아니라 웹소설 폐지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신중하고 사려깊은 서비스를 약속했고, 동시에 내부 법무팀과 작가 커뮤니케이션팀을 통해 신속, 공정하게 처리하는 내부 프로세스 정립을 약속했지만 과연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는 앞으로 계속해서 증명해야 할 것이다. 레진은 사과문에서 1500억 매출과 동시에 누적적자 150억을 언급하며 이번 사태를 값진 투자라고 생각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먼저 누가 투자를 이런 식으로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자. 작가들이 지금까지 꾸준히 요구했던 건 실수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명백한 잘못에 대한 사과와 반성,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이었다. 작가들에게 부당대우를 했던 것, 웹소설을 졸속으로 종료하고 피해작가를 고소하고 변명으로 일관하며 업계에 부정적인 선례를 잔뜩 만들어낸 것뿐 아니라 누적된 적자도 ‘레진님’ 본인을 포함한 경영진의 책임이다.

 

끝으로 사과문 전문의 마지막 단락에서 MG제도와 정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레진은 “구매횟수에 따라 작품별로 정산단가 기준 사용료를 지급하는 방식이며 (중략) 그 결과 회사와 전체 작가분들 간의 수익분배비율은 약 5:5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MG제도에 따른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판매되는 코인 가격과 계약상 정산단가를 산술적으로만 비교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해석이 조금 필요한 부분이다. 아마 레진코믹스는 구글과 애플 등 모바일 플랫폼에서 원천 징수하는 30%의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가지고 작가와 나누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직접 수수료를 언급하기 보다, 자신들이 많은 작가들의 생계를 “책임져주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미심쩍다.

 

정말로, 긴 싸움이었다. 말하자면 첫번째 페이즈가 끝난 느낌이다. 지난 1년이 더욱 뜻깊은 것은, 커리어를 쌓기 시작하는 단계인 젊은 여성 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단결했다는 점이다. 만화가협회 등의 협조는 있었으나, 큰 영향력과 발언권을 가진 소위 ‘중견 작가’들의 개인단위 연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본인의 일이 아님에도, 생계를 위협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재 중단을 통해 연대에 동참한 작가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피해 작가들이 더 나와선 안된다’며 전선의 가장 앞에 선 작가들도 있었다. 시위를 준비하고, 화장실의 변기를 닦고, 길바닥의 얼룩까지 지워가며 철저하게 뒷정리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웹툰계는, 이 여성들의 연대에 큰 빚을 졌다.

 

이번 사건에 ‘어차피 해도 안된다’고 말하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들의 연대는 한희성의 사과를 받아냈다. 이번 레진의 사과문을 환영하는 이유는, 깊은 마음에서 우러난 진실한 사과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앞으로 펼쳐질 실질적인 변화의 마중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했던 대로 첫번째 페이즈가 끝났다. 다행히 저스툰의 작가에 대한 폭력에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성명 등 긍정적인 신호들이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웹툰계에 새로운 시기가 열렸다.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오늘 이들이 만든 승리의 기억은 오래도록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작성자: 웹툰평론가 이재민

작성일: 2018년 7월 13일

등록일: 2018년 7월 13일

수정일: 2018년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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