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여기선 그래도 됩니까?

 

 

 

여기선 그래도 됩니까?

 

2018년 웹툰계에 드디어 산업적 측면에서 다양한 화두들이 논의의 장에 오르고 있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된 레진 사태는 독자 플랫폼을 구축한 업체가 작가를 소모품으로 여길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또 다양한 예측이 무색하게 대표의 기분에 따라 작가의 생계가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지난 몇 년간 표준계약서 도입을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곤 있지만 아직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공정거래위원회는 모든 웹툰 플랫폼의 계약서를 전수조사해 시정명령을 내리는 등 일부 진전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한번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케이툰이 일방적으로 작가들에게 고료+수익쉐어였던 계약을 변경해 RS(Revenue-Sharing, 수익쉐어)방식으로 전면 수정한다는 내용을 알려왔다. 당연히 작가들 사이에서 강한 반발이 있었다. 또한 케이툰을 위탁운영중인 투니드 엔터테인먼트의 잘못인지, 아니면 자금을 대고 있는 KT가 원인인지에 대한 공방이 오갔다. 이에 KT는 사실이 아니라는 발표와 함께 서비스를 중단하는건 계획에 없었으며, 투자 비용을 줄이면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투니드는 이 주장을 반박하며 KT측에서 구두로 ‘운영비를 70% 감축하고, 7월 1일부로 적용하라’고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투니드측에서 문제를 지적하자 ‘협상은 불가하며, 파장은 감수하겠다. 축소 규모가 더 커질수도 있다’는 단호한 입장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양쪽의 입장을 들어보면 내용은 이렇게 정리된다. 일종의 하청을 맡은 투니드는 원청업체인 KT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그 내용은 고정비용을 줄이고 계약을 변경하겠으니 그렇게 알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투니드는 반박했고, KT의 입장에 변화가 없자 작가들에게 그 내용을 전달한다.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자 KT는 7월에 당장 시행하지는 않겠다며 한발 물러났다. 미디어 SR의 기사에 따르면 KT는 현재 작품을 줄이거나 격주 연재등의 방법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한다. 홍보실 관계자가 “어느 정도 도태되는 분들에 대해서는 (연재) 연장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나”라는 말은 지금 KT가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정확하게 나타나고 있는 말로 들린다.

 

KT의 말대로라면 결국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니 들이는 비용을 줄이겠다는 건데, 케이툰은 놀랍도록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플랫폼이다. 태생부터 올레마켓이라는 당시 KT의 독자 플랫폼을 만들어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올레마켓웹툰이 탄생했지만, 올레마켓 웹툰은 올레마켓과 별도로 접속할 수 있었다. 일방적으로 명칭을 변경해 케이툰이 되었지만, 운영방식은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다. 모바일 이용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IT기업을 선도한다는 운영주체가 무색하게 앱 개선은 늦었다. 다른 오류들은 차치하고, 시각매체인 웹툰의 특성상 해상도와 스크린 크기에 대응하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도 아이폰X를 사용해 접속하면 화면 크기가 스크린에 꽉 차지 않고 예전 해상도로 제공된다. 웹툰 앱을 제공하는 업체들 중, 이전의 화면비가 유지되는 것은 케이툰이 유일하다.

 

뿐만 아니라, 투믹스와 코미카, 레진코믹스 등이 가열찬 홍보전을 펼칠 때에도 케이툰은 조용했다. 유저 유입을 위한 외부 홍보가 매우 적었다는 이야기다. 현재 케이툰의 수익모델은 유료 미리보기 대여다. 유료 미리보기 대여는 다른 말로 하면 ‘기다리면 무료’다. 소장이 아니기 때문에 구매동력이 떨어지고, 가격이 낮기 때문에 작가와 독자들은 꾸준히 소장 시스템의 도입을 요구했으나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올레마켓웹툰은 애초에 KT의 독자 앱스토어를 홍보하고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으니 무료 웹툰을 푸는게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케이툰 체제로 전환하고 ‘웹툰 플랫폼’을 표방했다면 당연히 따라와야 할 수익체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지의 대기업 KT가 운영한다는 점 때문에 작가들 사이에서 케이툰은 안정적인 연재처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KT가 생각을 바꿨다. 수익 개선을 위한 방안을 도입하지도, 홍보를 하지도 않았지만 수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을 작가에게, 홍보팀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도태되는 작가’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논의는 이런 식으로 후퇴한다. 플랫폼에 유리한 계약과 관행을 개선하자는 논의가 일어나자 일방적으로 계약을 변경하면 안된다고 알려줘야 하고, 계약서상 작가를 파트너로 볼 것인가 노동자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하려고 하니 이번엔 제작사나 에이전시가 사실상 플랫폼의 하청업체로 일하고 있다는 점이 보인다. 수익구조와 연결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논하기는 커녕, 작가도 사람임을 이야기해야 하는 수준으로 논의는 후퇴하고 만다.

 

이렇게 되면 결국 또 피해를 보는건 작품을 만드는 작가와 독자다. 좋아하는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도 소장할 수 없으니 그냥 일주일을 기다려서 한 편을 보았더니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작품을 내리겠다는 말을 듣게 되고, 작가의 입장에선 수익이 나지 않으니 ‘저수익 작가’로 낙인찍히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수익이 나지 않으니 사업을 축소하고, 사업을 축소해서 수익이 더 줄었으니 사업을 접어버리는 그림이 그려지는 건 그냥 우연이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이 작가 탓이라면, 왜 플랫폼이 있는가? 웹툰이라는 감나무 밑에서 대박이 터지길 기다리며 입을 벌리고 있는 플랫폼들의 얼굴이 보일 때마다 당혹스럽다. 

 

지난 칸 영화제에서 케이트 블란쳇은 동료 배우들과 함께 레드카펫에 서서 연설을 했다. 케이트 블란쳇은 “여성은 이 세상의 소수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산업의 흐름은 그렇지 않다”는 말과 함께 “우리는 모든 산업의 여성들과 연대해 이곳에 섰다”고 말했다. 자신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가장 보수적인 영화제에서, 자신이 가진 발언권과 언론의 주목을 활용하는 연설이었다. 만화계에도 분명 지금 싸우는 작가들보다 더 큰 발언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입맛이 씁쓸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만화가협회가 이사회에서 공식적 대응을 위해 안건을 논의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는 동안, 마치 귓전에서 웹툰 <송곳>에서 구고신이 ‘여기선 그래도 되니까’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여기”가 계속해서 바뀌다가 마침내 웹툰산업에까지 도달하는 동안, 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고민보단 ‘만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처하면 된다는 나이브한 말로 일관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산업을 이야기 하면서 시스템과 구조를 빼고 진정성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논의를 막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속에서도 “여기선 그래도 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도록,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 이번 KT의 일방적인 계약변경 요구가 여기서 끝나도록, 그리고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작성자: 웹툰평론가 이재민

작성일: 2018년 6월 22일

등록일: 2018년 6월 25일

수정일: 년 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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