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돌아보기 : 전반전 (2010-2015)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진부하지만, 웹툰계에서는 ‘강산이 변했다’는 말은 오히려 너무 점잖은 표현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은 것이 변했다. 2010년대는 웹툰이 산업의 규모로 커졌을 뿐 아니라, IP확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확인한 시기기도 하다. 불과 10년 전인 2009년 말로 돌아가 웹툰을 유료로 판매하고, 웹툰 원작의 영화와 드라마들이 대성공을 거둔다고 말하면 믿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웹툰인사이트에서는 짧게나마 2010년대의 웹툰계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격동의 2010년대를 정리하면서, 다가올 2020년대를 기대해본다.

 

 

2010 – 2011년 : 이전과는 다른 시대

 

2010년과 2011년은 웹툰 역사에 남을 작품들이 많이 등장했던 해다.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한 작품으로는 2010년 1월에는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가 네이버웹툰에서, 6월에는 <신의 탑>이, 7월에는 <치즈 인더 트랩>이, 2011년에는 <갓 오브 하이스쿨> 연재를 시작했다. 최근 연재를 종료한 <가우스 전자>는 2011년 6월부터, <이런 영웅은 싫어>가 11월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다음웹툰에서는 Hun 작가의 <은밀하게 위대하게> 역시 2010년 7월 연재를 시작했고, 네온비 작가의 <다이어터>가 2011년 2월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놀라울 만큼 다양한 주제의 장편 작품이 등장한 시기가 이 시기다.

 

당시 웹툰 플랫폼은 네이버, 다음, 야후, 파란등의 포털사이트 기반의 웹툰 플랫폼과 SK에서 운영하던 툰도시 등이 대표적이었다. 툰도시의 경우 유료 웹툰을 판매한 2010년대 최초의 사례기도 하다. 이현세 작가의 <비정시공>, <레드파탈>을 유료 전환 전에 무료로 볼 수 있게 하는 ‘기다리면 무료’ 방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마사토끼와 신군 작가가 협업한 <2인실> 역시 툰도시에서 유료로 선공개되고 무료회차가 풀리는 방식으로 연재되었다.

 

이 시기는 본격적으로 웹툰이 판매되기 직전 시기로, 신변잡기적 생활/일상툰과 개그툰이 인기를 얻던 웹툰 플랫폼에 본격적으로 서사 중심의 작품들이 중심이 된 시기다. 또한, 여러 작가들의 증언을 토대로 되짚어보면 2010년까지는 회당 원고료가 8~10만원 선으로 낮았지만, 2011년을 기점으로 신인 작가 원고료가 크게 올랐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웹툰작가가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원고료를 지급받게 된 것이다. 조금씩 웹툰의 분량이 늘어나기 시작한 시기도 바로 이 즈음으로, 연재되는 웹툰의 분량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소수의 작품만 영상화가 진행되었는데, 대부분 웹툰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기록해 ‘웹툰의 영상화는 실패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이끼>가 영화화되며 340만 관객을 동원해 웹툰 원작 영화 최초로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012-2013년 : 웹툰 사세요, 웹툰 팝니다.

 

 

말 많고 탈 많던 이 시기에는 유료 웹툰이 본격적으로 처음 등장했고, 과도기를 거쳐 안정되던 시기였다.

 

2012년의 문을 열어젖힌 사건은 다름아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웹툰 규제 시도였다. 2012년 1월 7일자 조선일보가 “<열혈초등학교>, 이 폭력만화를 아십니까”라는 기사에서 당시 야후 카툰세상에 연재중이던 웹툰 <열혈초등학교>의 폭력성을 지적, 웹툰이 청소년에게 폭력을 조장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고, 이틀 뒤인 1월 9일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웹툰 모니터링 강화” 방침을 밝혔다. 이어 10일에는 야후 카툰세상에서 <열혈초등학교>의 연재가 중단되고, 연재분 대부분을 삭제하기도 했다. 또한 방심위는 24개 작품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겠다고 사전통지를 해 문제를 키웠다.

 

이에 작가들은 ‘No Cut’ 캠페인을 통해 웹툰 하단에 이미지를 삽입하는 한편, 방통위 앞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방심위의 웹툰 규제방침에 반발하는 독자들이 합류하는 등 이슈가 확대되었다. 그리고 2012년 3월 말, 방심위는 한발 물러서 웹툰-만화계의 요구를 수용해 웹툰 자율규제안을 만들고, 자율규제 체제 하에서 작품 등급을 검토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이렇게 복잡한 2012년 초가 지나고, 웹툰계에서는 이전까지 실험으로 남아있던 웹툰 유료화 모델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몇몇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던 웹툰 유료화는 2010년 툰도시의 시도로 이어졌다. 하지만 툰도시는 서비스 이용 자체가 불편했고, 당시 결제 시스템 역시 이용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후 툰도시는 2013년을 끝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7월, 다음웹툰은 포털 웹툰 플랫폼으로는 최초로 완결 웹툰의 유료화를 도입했다. 연재 작품은 무료로 감상이 가능했지만, 유료가 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유료로 서비스하는 방식이었다. 네이버웹툰은 다른 방식으로 작가 수익을 다각화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PPS(Page Profit Sharing)를 도입해 작품 하단에 광고를 삽입하는 방식이었다. 이 시기, 모바일 디바이스의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이기도 했다.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나면서 웹툰을 PC에서 보던 유저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웹툰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3년 7월, 최초의 유료 웹툰 판매 플랫폼 레진코믹스가 선보인다. 레진코믹스는 출범 당시 PC버전이 아닌 모바일 앱을 먼저 출시했고, 이후 9월에 PC 웹 버전을 공개했다. 결제는 모바일 결제 방식에 더해 PC버전에서는 문화상품권 결제가 추가되기도 했다. 웹툰을 전문으로 다루면서 유료 결제모델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첫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초기 주력 작품이었던 <나쁜 상사>가 1년만에 2억 8천만원의 수익을 올렸고,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는 출시 이후 12개월 연속 만화분야 1위, 애플 앱스토어에서는 10개월 연속 도서부문 매출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오픈 1년만에 신인 작가 200여명이 레진코믹스를 통해 데뷔하는 등 ‘레진코믹스 돌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웹툰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웹툰도 판매할 수 있다’는 시장의 인식과 동시에 ‘웹툰을 돈 주고 본다’는 독자들의 인식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그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던 웹툰 원작의 영상물이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영화화로 최초로 695만명을 동원하며 500만명을 돌파한 영화로 기록됐고, 웹툰 원작의 작품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로 이후 웹툰 원작 작품의 OSMU가 웹툰계의 화두가 된다.

 

 

2014-2015년 : 플랫폼 춘추전국시대

 

엄청나게 많은 플랫폼들이 생겨났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지만 이전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흔치 않다.

 

2013년 7월 기점으로 다음과 네이버웹툰에 연재되는 작품은 200여작품이 채 되지 않았다. 2019년 11월 28일까지 네이버웹툰에 연재중인 작품 수는 317작품으로 당시 양대 플랫폼 연재작보다 많다. 이렇게 작품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가 바로 이 시기다. 레진코믹스의 성공으로 다양한 플랫폼이 생겨나 최대 35개 이상의 플랫폼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웹툰 플랫폼들이 경쟁적으로 작가를 유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 데뷔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신인으로, 당시 신인작가 원고료는 140~160만원가량으로 파악된다. 2015년 레진코믹스는 MG(미니멈 개런티, 최소보장금액) 200만원을 내세웠고, 곧 업계 표준처럼 자리잡았다. 이때 처음 생겨난 MG제도는 작품의 판매고와 별도로 지급되는 원고료 개념과는 다르게 작품의 수익과 연동되며, 작품이 MG 이하의 매출을 내더라도 최소보장금액을 지급하는 시스템이다. 

 

MG 시스템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모두 존재한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작가에게 최소 월 200만원의 수익을 보장하는 제도지만, 작가의 노동, 즉 작품 제작에 대한 비용을 플랫폼이 지급하지 않고 매출액을 통한 수익쉐어만을 따지기 때문에, 원고료+수익쉐어 방식보다 작가의 노동에 대한 대가가 상대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2010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신의 탑>을 2년 단위로 9월 2째주 컷을 무작위로 캡처했다.
연출상의 변화는 2016년에 두드러지지만, 폰트 등은 2014년부터 변화한다.

 

 

플랫폼이 늘어나고,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한 웹툰 소비가 본격화되면서 웹툰의 연출 방식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위 그림은 모바일 디바이스(아이폰X)에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2년 단위로 <신의 탑>의 연출이 변화된 과정을 캡처해 나열해 보았다. 2014년에 오면 PC에서 읽을 것을 염두에 둔 작은 폰트가 굵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2014년은 네이버웹툰이 해외진출 원년을 선언한 해이기도 하다. 2014년은 전세계에서 최초로 스마트폰 보급률이 PC 보급률을 앞선 해로, PC 중심의 시장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웹툰의 무게중심이 이동한 시기가 바로 이 시기다. 

 

2000년대 말 <마음의 소리>, <골방환상곡>등에서 처음 등장한 “차도남”, “엄친아” 등의 요소가 대중적으로 유행하며 인터넷 문화에 속했던 웹툰이 대중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콘텐츠로 자리잡았다면, 2014년 가을 드라마화 된 <미생>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미생>의 단행본 판매고를 끌어올리는 등 ‘장그래 신드롬’이 일어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상물 계약이 활발하게 일어난 시기이며, 이후 웹툰 원작의 드라마, 영화들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2010년대의 ‘전반전’을 정리하면 웹툰의 유료화, 플랫폼 군웅할거의 시대, 모바일 중심, OSMU로 정리할 수 있다. 본격적인 산업화 궤도에 오르는 과정이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웹툰 시장이 역동적으로 변화한 시기기도 하다. 작가들이 크게 늘어났고, 그로 인한 문제점들이 싹트던 시기이기도 하다.

 

다음 주에 게시될 “2010년대 돌아보기 : 후반전 (2016-2019)”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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