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이 힘을 합치는 건 콘텐츠 때문이 아니다.

 

 

흔히 ‘콘텐츠가 왕’이라는 말을 많이 하던 시기가 있었다. 콘텐츠의 몸값이 치솟고, 치솟는 몸값에 따라 제작비가, 퀄리티가 상승하다 보니 좋은 콘텐츠, 즉 가능성 높은 IP를 모셔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는 걸 보고 했던 말이다. 독점작을 원하는 플랫폼은 전례 없는 금액을 투자하기도 하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콘텐츠를 전세계에 홍보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콘텐츠가 왕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환경인 셈이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에만 한국 돈으로 30조원 넘는 돈을 쏟아부었고, 매년 10조원 이상을 독점 콘텐츠 제작에 쏟아붓고 있다. 인기 콘텐츠를 가진 미디어 기업들은 HBO MAX, 디즈니+등 플랫폼 사업을 시작하고, 콘텐츠 플랫폼 전쟁이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걸 보면 오로지 콘텐츠만을 위해 모든 무대가 펼쳐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그 너머에 있을 수도 있다.

 

 

* 사람이 모여서 돈을 쓰게 하자! : 락인(Lock-In)과 커머스

 

플랫폼의 최대 목적은 많은 사용자로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해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사람을 많이 모아야 하고,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콘텐츠 분야가 각광받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최근 쿠팡이 OTT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눈에 띈다. 쿠팡은 지난 여름 인수한 싱가포르의 OTT 플랫폼 온라인 서비스 부문을 활용해 OTT 서비스를 만들고 있고, 지금은 오리지널 콘텐츠, 독점 스포츠 중계권 등을 손에 넣기 위해 협상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쿠팡의 유료멤버십인 로켓와우 가입자는 20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간 쿠팡을 이용하는 사람(MAU)은 1,400만명을 넘는 초거대 플랫폼이다.

 

‘쇼핑몰 플랫폼’인 쿠팡은 아마존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의 ‘프라임 비디오’ 서비스와 비슷한 OTT 플랫폼을 만들고, 로켓와우 가입자들은 무료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한편 OTT 서비스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기도 하는 모델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은 ‘프라임 비디오’ 뿐 아니라 ‘아마존 뮤직’, ‘아마존 클라우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마존은 왜 이런 서비스를 하고, 쿠팡은 또 왜 OTT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을까?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으면 쇼핑몰이 저런 사업을 하지? 같은 생각이 들었다면, 먼저 아마존이 어떻게 이 서비스로 돈을 벌고 있는지 이야기해보자. 아마존은 2010년 ‘아마존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지금은 연간 5조원 가량을 영상 콘텐츠에 투자하고 있다. 2014년부터 시작해 2019년에 마무리된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인기작이었던 <The Man In The High Castle>은 약 700억원 가량이 투입되었는데, 2018년까지 이 드라마를 통해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한 신규 회원이 115만명 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아마존 프라임은 연회비가 99달러고, 이걸 간단하게 10만원으로 계산하면 이 드라마가 만들어낸 매출만 1,150억원이 된다. 제작비 이상을 벌어들인 셈이다. 물론 모든 콘텐츠가 이런 역할을 하진 않지만, ‘독점’ 콘텐츠로 오래 보유한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콘텐츠 투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구실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므로 손해는 아니라는 계산이다.

 

그런데,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하면 앞서 말한대로 음악, 클라우드 서비스는 물론 여기에 더해 무료배송과 빠른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말 그대로 생활에 압도적인 편의를 제공하는 서비스고,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한 사람은 이 때문에 더 많은 돈을 아마존에서 물건을 구매하는데 사용하게 된다. 아마존 프라임 가입자는 연간 평균 1,300달러 가량을, 비 가입자는 연간 평균 700달러 가량을 사용하는데, 거의 두배 가까이를 돈을 내면서 더 사용하는 셈이다. 익숙함이 이렇게 무섭다. 이런 효과를 ‘락인(Lock-In)’ 효과라고 부른다. 쿠팡 역시 OTT 서비스를 통해 이런 락인 효과를 노리고 OTT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사람을 모으고, 돈을 쓰게 하기 위해서.

 

이처럼 콘텐츠는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을 하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멤버십으로 묶여(락인 된) 플랫폼에서 돈을 쓴다. 거래가 이러나는 것이다. 번역하면 ‘상거래’가 되는 커머스는 소셜 커머스의 시대를 지나 플랫폼 커머스, 미디어 커머스, 라이브 커머스 등 분야가 다양해지고 있다. 쿠팡이 OTT 서비스를 준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커머스 시스템을 갖춘 쿠팡은 사람들이 ‘더 길게’ 락인되기를 바란다. 이런 서비스를 통해 생활 깊숙이 침투해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서비스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져 결과적으로 로켓와우라는 유료 멤버십을 ‘해지할 이유’를 찾기 어렵게 만드는 걸 목적으로 한다. 쿠팡이 모델로 삼은 아마존 프라임 역시 무료배송은 잘 안써도 영화를 많이 보니까, 영화는 잘 안봐도 음악을, 클라우드 서비스를, 빠른 배송을 많이 쓰니까 유지하게 되는 셈이다.

 

쿠팡은 여러모로 이점이 있다. 일단 많은 사용자와 유료 충성고객을 확보해 두었고, 이미 ‘쇼핑’이 중심이기 때문에 돈을 쓰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사실 커머스 서비스는 신세계백화점이 ‘드라마 커머스’를 천명하고, 트위치나 넷플릭스 등의 플랫폼 역시 문을 두드리고 있는 분야다. 그러나 이들은 쇼핑 플랫폼을 찾거나, 새로 개발해야 한다. 이미 콘텐츠를 보기 위해 구독료를 내는 사람들에게 추가로 돈을 쓰게 만드는 것도 일이다. 하지만 쿠팡은 OTT를 얹으면 된다.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출발 자체는 유리한 지점이 있다.

 

 

* 플랫폼과 콘텐츠 기업들이 동맹을 맺는 이유

 

최근에는 이런 흐름을 타고 플랫폼간 업무협약이나 일종의 동맹을 맺는 사례가 늘고 있다. 카카오tv가 오픈하면서 내놓은 드라마 중에는 독특한 출신(?)으로 주목을 받은 작품이 있었다. 드라마 <연애혁명>은 네이버웹툰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인기작이지만 카카오가 만든 서비스인 카카오tv에서 드라마로 방영됐다. 물론 이건 카카오페이지가 아니라 카카오tv와 네이버웹툰이 협업한 사례지만, 경쟁관계에 있는 플랫폼들이 콘텐츠를 교환한다는 점은 꽤나 놀라웠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네이버는 CJ ENM이 최대주주로 있는 스튜디오 드래곤과 1,500억 상당의 주식을 맞교환했다. 이를 통해 네이버는 스튜디오 드래곤의 2대 주주가 되었는데, 이로써 콘텐츠 플랫폼인 넷플릭스를 3대 주주로 밀어내게 됐다. 또 스튜디오 드래곤은 ‘러브 크러쉬’라는 미디어 커머스 서비스를 준비중인데, 스튜디오 드래곤의 드라마에 등장한 PPL 상품부터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서비스다. 

 

언뜻 보면 네이버웹툰을 중심으로 뭉친 것 같지만, 네이버웹툰과 협업이 아니라 모기업인 네이버와의 협업이라는 점을 중심으로 해석해봐야 한다. 네이버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순 이용자를 가진 플랫폼이고, 네이버페이를 비롯한 결제부터 쇼핑까지 모두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라이브 방송으로 소통하며 물건을 판매하는 ‘라이브 커머스’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고, 내년에는 블로그에서도 직접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블로그마켓’ 서비스를 런칭 준비중이다. 결국 사람이 모인 곳에서 물건을 팔고 받는 수수료가 가장 중심에 있다.

 

네이버 역시 이렇게 네이버에 ‘락인’ 된 고객들을 대상으로 ‘네이버 멤버십’ 서비스를 제공중이고, 이를 통해 웹툰, VOD, 쇼핑에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이나 적립금 혜택을 준다. 말 그대로 생활 전반에 침투한 플랫폼인 셈이다. 카카오 역시 카카오페이, 카카오tv, 카카오페이지, 카카오T 등 엄청나게 다양한 플랫폼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결국 카카오tv와 네이버웹툰의 협업, 네이버와 스튜디오드래곤의 동맹, 은 서로가 부족한 점을 채워 ‘더 많은 사람’을 모으고, 잠재 고객(실제로는 유료 멤버십에 가입한)을 확충하기 위한 방편이다.

 

 

* 콘텐츠는 왕이 아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콘텐츠는 ‘사람을 모으기 위한 수단’의 하나다. 다른 어떤 서비스보다 오래 사람을 잡아 놓을 수 있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락인’ 효과가 가장 강력하기 때문에 콘텐츠는 최근 가장 각광받는 수단이 됐다. 이렇게 오래 노출된 고객들에게 플랫폼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벗어나면 불편한’ 상황을 꿈꾼다. 지금 웹툰 콘텐츠가 흥하는 이유도, 사람을 많이 모을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은 막강하지만, 또 다른 대안이 나오면 쇠락할 수 있는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사람을 모으고, 락인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가능하다. 지금까지는 콘텐츠가 최고라는 결과만 알고 있을 뿐이다.

 

플랫폼 시장으로 재편된, 또는 재편되고 있는 산업체계에서 웹툰이 중심이 아니라는 점은 웹툰이 만화로, 콘텐츠로 가지고 있는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콘텐츠는 왕이 아니다. 물론 지금 당장 고민할 단계는 아니다. 웹툰이 가장 확실한 콘텐츠라는 점은 최근 몇 년간 수차례 증명되어 왔고, 시장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다만, 실제로 플랫폼이 움직이게 만드는 커머스를 중심으로 맺어지고 있는 거대 기업간의 연합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 또 웹툰이라는 형식 자체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는 건, 플랫폼에 연재되는 작품만이 아니라 다양한 작품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Categories: NEWS
웹인편집부

Written by:웹인편집부 All posts by the author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