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BL은 글로벌, 대세는 디지털” 제임스 웰커&후지모토 유카리 교수

2월 25일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에서는 흥미로운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바로 가나가와 대학의 제임스 웰커 교수와 메이지대학의 후지모토 유카리 교수의 강연이었습니다. 강연 주제는 각각 “BL 미디어와 젠더-섹슈얼리티의 변용”과 “일본 만화속 ‘여성 간의 사랑’의 계보”였습니다.

 

강연에는 따로 통역이 제공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0여명의 참가자가 강연을 경청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이후 두 교수에게 짧은 인터뷰를 요청했고, 두분이 흔쾌히 승낙해 40분 가량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

 

같이보기: 서울대 일본연구소 “BL 미디어와 젠더-섹슈얼리티의 변용”, “일본 만화속 여성간의 사랑의 계보” 강연 개최

 


 

Q. 강연 중에 일본의 BL장르의 매출액 규모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웰커: 일본의 야노경제연구소에서 작성한 보고서인데,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의 BL장르 드라마 CD, 만화책 등을 모두 포함한 판매량을 추정치로 발표한 자료가 있습니다. 이걸 살펴보면 BL 장르 매출액은 대략 220억엔(한화 약 2,200억원)가량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추정치이기 때문에 오차는 있습니다만 대략 이정도 규모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또, LGBTQ로 대표되는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과 BL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둘의 차이는 어떤 걸까요?

 

웰커: 당연히 깊게 생각하면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과 BL을 명확하게 구분짓기는 어렵습니다. 명쾌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고, 반대되는 예시가 항상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해서 경향만을 주목한다면 BL은 주로 판타지적인 요소를 다루고, 성소수자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은 현실의 이야기를 한다는 특징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깊게 생각하면 할수록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후지모토: 이전에는 잡지 등 제한된 미디어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최근에는 성소수자 이슈가 좀 더 대중매체로 옮겨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본적으로 BL은 여성 독자를 위한 장르고, 때문에 좁게 본다면 독자들의 성 지향성 등과는 관계없이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출판물 등을 BL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외의 독자들도 포괄하는 것이 LGBTQ 미디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이건 장르적인 특징을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웰커: 흔히 하는 오해중에 BL이 성애만을 다룬다는 오해가 있는데, 물론 그 안에도 포르노적 요소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많은 작품들이 서정적인 로맨스를 다루고 있거든요. 그리고 정식 출판되는 작품과 동인지를 그릴 때 작가들의 자세도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요시나가 후미 작가의 <어제 뭐 먹었어?>의 정식 출판본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는 로맨스 작품이지만, 이 작가의 동인지는 완전히 출판물과 분리되어 있는 성애물을 그리기도 하거든요.

 

 

요시나가 후미 작가의 <어제 뭐 먹었어> 1권.

 

 

웰커: 이렇게 카테고리가 디테일하게 나뉘는 중이라고 봅니다. 들여다보면 들여다 볼 수록 명확한 구분은 힘들지만, 소비되는 양상이나 타겟 독자 등의 큰 부분에서는 분명 차이가 있는 부분들이 있죠. 하지만 관계성을 중심으로 보면 퀴어 장르에 들어간다고 볼 수도 있고, 또 그 안에서도 세부적인 장르에 따라서 내용이 달라질 수 있어요. 단순히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죠. 

 

Q. 한국에서도 BL이 상업시장에 어느정도 편입을 하고 있습니다. 대형 웹툰 플랫폼들이 BL 작품들을 서비스하기도 하고요. 특히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면서 웰커 교수님이 말씀하신 ‘BL의 글로벌화’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상업시장과 언더그라운드 시장이 분리될지, 아니면 상업시장이 주류가 될 지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웰커: 결국 중요한건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팬들이 얼마나 소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겠죠. 후지모토 교수님과 필리핀에서 열린 BL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많은 젊은 층이 방문했고, 그 중 대부분이 중산층 정도로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그 팬들이 구입하는 것이 대부분 스티커였어요. 동인지 한두권이나 일러스트 몇점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스티커를 샀죠.

아직 시장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 소비하기 부담스럽다면 시장이 커지기가 힘들겠죠. 싱가포르 같은 나라는 평균 소득이 높은 편이지만, BL이라는 장르가 자리잡기 상당히 힘든 조건이고요. 

 

후지모토: 태국이 동남아시아 BL의 허브로 떠오르고 있어요. 동남아시아에서 BL은 태국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의견도 있고요. 만화보단 다른 문화 분야에서의 현상이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물론 K-POP이 강세인 곳이기도 하고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태국에서는 꽤나 영향력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이를 통해서 태국 외의 다른 곳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겠지요.

 

웰커: 실제로 태국에서는 BL 만화를 직접 소비하기보다 ‘BL 코드’를 소비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강연에서 말씀드렸던 K-POP 커버 커플의 팬덤이라던지, 드라마라던지 하는 식으로요. 한류의 분위기나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태국에서는 Korpanese 라고 해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경향도 있어요. 작품으로 보자면 태국에서 소비되는 BL은 일본의 BL보단 훨씬 판타지성이 배제된 리얼한 작품이 많습니다. 좀 다르죠.

 

후지모토: 태국에서 보이는 만화 문화를 향유하는 경향을 생각해보면 유머나 개그만화가 인기가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BL 역시 라이트하고 밝은 분위기의 작품이 인기가 많은 것으로 보여요. 웹툰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날 것으로 생각되지만, 독자들이 단행본으로 소비하는 만화와 웹으로 소비하는 만화의 장르나 소비경향이 다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웰커: 어쨌든 BL에 있어서는 상업적인 작품과 언더그라운드 시장이 함께 공존할 것이라고 봐요.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는 종교적인 배경이 강한 곳이 많고, 문화적 터부가 강한 곳이 많아서 BL이 진출하기 어려운 곳들이 있어요. 장기적으로 보자면 중남미 시장을 주목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강연에서 대만의 경우 95% 이상의 BL 독자들이 동성혼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는 조사결과를 보여주셨는데, 그렇다면 문화적 터부가 강한 곳에서는 어떤 반응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웰커: 먼저 독자 수가 굉장히 적죠. 하지만 독자 개인의 영역으로 보면 강한 영향력이 있다고 보입니다. 해당 국가들에서 BL 독자들에게 “종교적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절반 이상이 “그렇다”고 답했어요. 이건 굉장한 일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독자의 수가 아주 적기 때문에 사회 전체에는 영향이 적을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특히 도시에 사는 젊은 세대에게는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소비하는 인터넷 밈을 통해 보면 말이죠. 결국 BL이 동성애를 다루기 때문에 개인적 차원에서는 LGBTQ 이슈에 열려있다고 해도, 문화적으로는 그걸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 있죠. 몇몇 국가들에서는 동성애를 다루는 것, 그리고 성애장면을 다루는 것이 이중으로 불법인 상황이라 굉장히 어렵죠.

 

Q. 최근 한국 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독자 실태조사에선 “출판만화만 보는 독자”가 4%, 28%의 독자는 “출판만화와 웹툰을 같이 소비”하고 있고, 나머지 독자는 “웹툰만 소비”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이렇지만, 출판 기반의 산업이 상당히 강한 일본의 경우가 궁금합니다.

 

후지모토: 일본에서도 이미 디지털로 소비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습니다. 종이만화 소비량보다 웹툰을 포함한 전자책 소비가 더 많기도 하고요. 스크롤 방식에서는 한국이, 페이지 만화에서는 일본이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슈에이샤도 디지털 시장에 뛰어들어 소년점프 플러스를 시작했고, 다른 출판사들도 시작했거나 준비를 하고 있어요. 이렇게 디지털로 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고,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재미있는 작품이 어디서 많이 나오느냐 하는 거죠. 일본의 독자들도 재미있는 작품을 찾아 보게 마련이니까요.

디지털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이 앞서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고, 한국 회사들의 웹툰 앱이 1,2위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고요. 출판과 디지털이 완전히 분리된다기 보다, 큰 틀 안에서 디지털을 중심으로 경쟁하며 성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후 스케줄 때문에 인터뷰를 정리하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인터뷰를 한국어-일본어-영어가 뒤섞여 진행하면서도 현장의 모두가 공유하는 문화의 힘이야말로 만화가 가진 진짜 힘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 인터뷰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갑작스러운 인터뷰를 흔쾌히 승낙해 주신 제임스 웰커 교수와 후지모토 유카리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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