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이라는 거대한 성 안과 밖의 사람들

 

스포티파이의 CEO 다니엘 에크는 “아티스트들이 더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스포티파이를 비롯한 플랫폼의 수수료나 높은 시장 점유율을 비롯한 제반환경에 대한 비판에 “데이터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플랫폼은 본질적으로 독점을 원하고, 독점하는 플랫폼은 (플랫폼 내의) 경쟁시장을 제외하고 다른 시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제, 웹툰과 만화 이야기를 한번 해 보자. 

 

 

다니엘 에크의 말에서 시작된 논란을 바탕으로 플랫폼의 태생적 욕망, 그리고 산업 관점에서 창작을 바라본 결과를 이야기했다. 독점, 더 많은 사용자, 플랫폼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기를 원하는 플랫폼은 창작물을 소비재로 인식한다. 플랫폼은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제공해 사람들이 자신들의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이용하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 앞에 ‘당신이 좋아할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법을 갈고 닦는다. 수많은 콘텐츠들이 경쟁하는 플랫폼에서 지금 여러분이 눈앞에서 만나는 콘텐츠로 뽑히기 위해, 그리고 결국 감상과 결제로 이어지게 만들기 위해 작가들은 무한 경쟁체제에 놓인다.

 

넷플릭스처럼 사실상 매절 계약을 통해 독점 유통권을 획득하지 않는 한, 플랫폼의 유통체계는 기본적으로 경쟁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작품을 보도록 유도하기 위해 많은 작품을 모으고, 많은 숫자의 작품들은 또 1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구조다. 여기서 안정적 IP수급을 위해 웹툰 플랫폼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보다 많은 작품을 어떻게 모을 수 있을까?

 

* 초경쟁 시장, 개인 창작자는 어디로 가야하오

 

웹툰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넷플릭스처럼 검증된 일정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작품을 선별하는 관문을 가지고 있다. 투고 또는 공모전을 통해 관문을 통과하는 절차를 거쳐야 경쟁시장에 입성할 수 있다. 하지만 경쟁시장에 진입하면 그 이후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넷플릭스가 폐쇄적으로 직접 콘텐츠를 관리하고, 유튜브는 장벽을 없애 자율경쟁을 유도한다면, 다수의 웹툰 플랫폼들은 관문 안쪽에선 선별한 작품끼리 자율경쟁을 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다.

 

작품 숫자를 늘리려는 고민을 하던 플랫폼들은 개인 창작자를 넘어 스튜디오 체제를 도입하기 시작한다. 안정적으로 IP를 수급하는 방식을 웹소설-웹툰으로 이어지는 웹소설 원작 웹툰에서 찾는 한편, 기존에 인기를 얻은 IP를 가진 작가들이 스튜디오를 만들어 보다 안정적인 창작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산업의 눈으로 보면 이건 고도화와 안정화 시기로 접어드는 과정이지만, 개인 창작자의 관점에선 위기다.

 

플랫폼 내 경쟁은 주간마감체제를 자리잡게 했고, 분량이 늘어나게 만들었다. 유료 판매가 정착되면서 보다 많은 분량, 보다 화려한 그림, 보다 흥미로운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를 모두 요구하는 웹툰은 더 이상 개인 창작자가 주간 마감을 버티기 힘들도록 만들었다. 웹툰 작가들은 입을 모아 ‘데뷔하기보다 차기작 연재하기가 더 힘들다’고 말한다. 개인 창작자가 판을 키웠지만, 개인 창작자가 진입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초경쟁시장에 개인의 삶을 갉아먹으며 연재를 해내지 못하면 다음을 기약하기 힘들다.

 

물론 경쟁은 좋은 것이다. 치열한 경쟁은 발전으로 이어지고, 그 발전은 다시 경쟁력이 된다. 하지만 경쟁이 탈락시키기 위한 장치가 되어선 안된다. 경쟁은 경쟁에 참여한 사람들만의 무대여야 하고, 경쟁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끌려들어가는 블랙홀이 되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상업시장과 비상업시장, 온라인 시장과 오프라인 시장 중에서 아티스트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오로지 하나로 통합된 시장 안에서 모두가 경쟁해야만 하는 시장은 위험하다. 시장의 안정성을 위한 창작의 기업화는 개인 창작자가 살아남을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 성 안과 성 밖의 사람들

 

다니엘 에크는 이런 상황에 ”더 열심히 작품활동을 하고, 팬들과의 접점을 더 넓히라”고 말한 셈이다. 상황은 아직까진 웹툰이 조금 낫다고 볼 수 있다. 스포티파이는 음악 창작에 대한 일종의 제작비를 지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넷플릭스는 추가 수익을 나누지 않는다. 하지만 웹툰은 비록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MG를 통해 최소 수익을 보장하고 있다. 이 점은 웹툰시장에 안착한 작가들에게 그나마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곳과 비교해 그나마 나은 상황일 때 논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

 

진짜 문제는 웹툰시장에 진입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개인 창작자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작가의 생각을 담은 작품을 발표하는 기능은 아직 웹툰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그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상업적 성공이라는 키워드에 매몰되어 다른 가치들을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시각이 지배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물론, 상업적 선도자가 이끄는 시장에서 다양성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지는 것도 맞다. 하지만 웹툰시장은 플랫폼이라는 성벽 안과 밖으로 명확하게 나뉜다. 일부에서는 웹툰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작가를 실패한 작가인 것처럼, 더 열심히 하지 않는 작가인 것처럼 보는 경우도 있다. 물론 틀린 진단이지만, 그 외에 선택지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마치 다니엘 에크처럼 “플랫폼의 시스템이나 정책을 탓하기보다 더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는 말은 무책임하다.

 

웹툰 시장이라는 성 안에 진입한 사람들은 성 안에 계속 남아있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플랫폼 역시 보다 많은 재능 있는 작가들을 성벽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리고 안정적으로 높은 가능성을 가진 작품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이 상황 자체가 아니라 다른 선택지가 사라져버릴 가능성이다. 

 

비유하자면 마블이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통해 영화시장 전체를 끌어올렸지만, 마틴 스콜세지가 이를 비판하며 ‘마블은 시네마가 아니다’ 라고 말한 상황과 비슷해지고 있다. 작가의 철학이 녹아 있는 작품보다 보다 높은 상업적 성공을 위한 작품이 주류가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발굴하고 주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독립만화, 또는 오픈플랫폼 독립연재를 통해 고군분투하는 개인 작가들을 조명하고 발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웹툰이라는 거대한 성 바깥에서 무언가를 일구려는 사람들을 조명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만화의 예술적 가치를 발전시키고 다양성을 보장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전 명작’을 보고 자랐고, 내가 자라면서 인기있었던 작품들이 다시 ‘명작’으로 재소환되는 경험을 하면서 자란다. 콘텐츠는 소비되면서 동시에 경험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상품은 소비되고 사라질 따름이다. 독점을 원하는 플랫폼과 시장의 욕망, 그리고 작가들의 창작을 위한 노력이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주간마감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하고, 플랫폼 밖에서 활동하는 작가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 플랫폼이 시장 전체가 되어 버리기 전에, 그리고 창작자들의 작품을 유통해 수익을 얻는 기업가가 “더 많이 만들고 노력하라”는 말을 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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