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팬에게 죄송하다’는 웹툰 원작 콘텐츠

 

 

웹툰 원작의 콘텐츠는 이제 대세가 됐다. 이미 대형 플랫폼들은 자사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상화 작품 라인업을 공개하고 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처럼 수년에 달하는 로드맵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1년간 두 자리 수 작품들이 영상화가 확정되고, 미리 발표를 해도 될 만큼의 안정성과 시장성을 확보했다는 반증이다.

 

채 10년도 안 되는 시간동안 웹툰 원작의 영상화는 우리의 대중문화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안방에서도,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만날 수 있는 콘텐츠가 바로 웹툰이 되었다. 스마트폰으로 스크롤하며 읽은 후 넷플릭스나 웨이브(WAVVE)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원작의 팬들이 웹툰 원작 영상 콘텐츠를 보고 실망했다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나온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의 감독은 ‘원작 팬들께 조금 죄송하다’는 말까지 남겼다. 나는 이 지점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원작을 본 사람들이 영상화 콘텐츠를 보고 나서 실망하는 걸까? 또, 왜 원작 콘텐츠를 변형시키면서 제작에 나서는 걸까?

 

 

* 독자의 경험

 

먼저 영상매체를 만드는 이들을 위한 변명을 하나 해 보자. 만화는 기본적으로 아주 개인적인 소비형태를 가지고 있다. 개인에 따라 읽는 시간도 다르고,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지점도 다르다. 하지만 출판만화에서는 이걸 시선의 흐름을 활용하고 정형화된 이미지(컷)의 크기를 다르게 하거나, 모양이나 효과음 등을 더해 저자의 의도에 맞추어 읽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웹툰 시대로 넘어오면서 이 룰이 깨진다. 스크롤 방식은 ‘무한 캔버스’를 현실에 구현했지만, 거꾸로 출판시절에 어느정도 정형화된 시선의 흐름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즉, 페이지를 넘기는 식으로 시선의 단절과 연속이 이어지지 않고 스크롤로 무한하게 이어지고, 스마트폰이라는 디바이스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가독성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작법들이 등장하게 된다. 시선의 흐름을 통해 독자의 독자경험을 유추하면서 효과를 만들어내는 제작법이 스마트폰 시절에는 가독성 중심으로 변화한다. 스마트폰은 지면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었다. 작법이 달라지면서 독자들의 경험 역시 출판시절과는 달라지게 된다. 작가의 의도대로 멈출 수 없이 ‘흐르는’ 이미지 속에서 독자들의 독자경험은 작가의 의도대로 읽어야 했던 단행본 시절보다 다양하게 분절된다.

 

이렇게 다양하게 분절된 독자경험은 어떤 콘텐츠를 만들더라도 반드시 만족시킬 수 없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게 된다. 개인적인 감상을 통해 이어지는 매체인 만화-웹툰이 영상물, 즉 다수에게 동시에 전파되는 매체로 이식된다. 보다 ‘대중적’인 코드를 삽입하거나, 매니악한 코드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원작의 팬들이 쌓아 놓은 독자경험이 부정당하는 경우가 생기고, 여기서 원작 팬들의 불쾌감이 생겨난다. “내가 보았던 것”이 재현되지 않는 것을 넘어 부정당하는 경험은, 원작 팬의 입장에선 불쾌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하위문화’를 ‘아래에 있는 문화’로 보는 경향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 ‘소재’로만 소비하지 말라

 

문제는 웹툰이 만화와 달리 이제 대중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의 만화는 접근성이 드라마나 영화보다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만화는 특정 계층이 소비하는 하위문화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웹툰의 시대가 열리면서 인터넷 문화를 향유하는 세대가 자라난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는 영상 제작 단계에선 아직까지 하위문화, 즉 서브컬처를 보다 상위 문화인 대중매체로 이식한다는 접근법을 버리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로 보인다. 

 

이런 시도는 만화와 웹툰을 소재로만 보는 안타까운 현실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면에 2D로 구현된 세상을 현실의 배우들로 100%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들어가는 자본의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얽히는 것은 이해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독자들이 공감하는 주제의식, 장르를 완전히 변형시키는 것은 웹툰을 같은 궤를 가지는 매체가 아니라 소재로만 소비하는 방식이다.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웹툰 플랫폼들은 각자의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자회사 스튜디오N을 설립해 공동제작에 나서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를 가리지 않고 ‘공동제작 스튜디오N’이라는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다음웹툰 원작을 드라마화 해 성공을 거둔 <이태원 클라쓰>는 아예 원작 작가인 광진 작가가 극본을 맡았다. 물론 작가의 참여 자체가 능사는 아니다. 작가가 아예 참여하지 않고 설득력 있는 각색을 해낸 <신과함께>의 경우 1부와 2부가 모두 천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결국 문제는 대중을 포섭할 수 있는 설득력이다. 예전에는 그 설득의 대상에 만화-웹툰의 독자가 포함되지 않았다면, 이제는 영상 제작 과정에서 대중으로서의 만화-웹툰 독자를 포섭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2016년 <치즈인더트랩> 드라마가 순끼 작가에게 대본 공유를 하지 않았고, 엔딩이 작가가 언급한 원작 엔딩과 비슷하다는 내용 때문에 작가와 배우, 그리고 원작의 독자들에게 사과한 일이 있었다. 또한 <쌍갑포차>의 제작발표회에선 원작과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원작 팬들께 조금 죄송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독자들은 사과를 바라고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재를 통해 긴 호흡으로 연재하는 작품이 드라마로 재탄생했을 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영상물 제작자들 역시 독자로서 자신이 공감한 내용을 얼마나 전달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는 없다. 21세기를 열어젖힌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피터 잭슨 본인이 <반지의 제왕>의 열렬한 팬이었기 때문에 종이 속에 인쇄된 세상을 스크린에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여기에 해답이 있다. 콘텐츠 시장은 무한 경쟁체제로 돌입했다. 검증된 독특한 소재를 얻고자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화면 안에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를 설득하기 위한 깊은 독서가 먼저다. 독자들과 발맞춰 읽어줬다면 나오지 않을 실수들을 더이상은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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