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퀄리티, 흐릿하게 잡히지 않는 이야기

만화의 ‘퀄리티’는 언제나 뜨거운 화두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보다 ‘질적으로 우수한’ 작품을 소비하고자 하는 독자들의 열망일수도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의 우수함을 표현하고 싶은 욕심일 수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본인이 지불한 재화에 대한 보상을 평가하고 싶은 것일수도 있다. 짧게 말하면, 작가가 독자에게 제공하는 ‘만화’의 질적인 수준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만화가 무엇인지, 그리고 만화의 퀄리티를 이루는 요소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 만화의 퀄리티를 결정짓는 요소들

 

만화는 단순히 그림만으로 이루어진 장르가 아니다. 스콧 맥클라우드는 <만화의 이해>에서 만화를 순간을 표현하는 칸과 칸, 그리고 그 사이에 빈 공간, 즉 홈통을 통해 만들어지는 연속성 있는 ‘완결성 연상’을 이용한 예술이라고 설명하면서 “의도된 순서로 병렬된 그림 및 기타 형상들”이라고 정의한다. 만화는 정지된 그림이 아니라, 정지된 그림의 연속과 그 사이의 빈 공간을 상상으로 채우면서 완성되는 장르라는 말이다.

 

스콧 맥클라우드 <만화의 이해> 중
  

 

따라서 만화를 이루는 요소는 칸, 칸을 채우는 그림, 그림이 표현하는 장면의 구도, 그림체, 말풍선 뿐 아니라 칸의 크기, 칸과 칸 사이의 거리, 폰트 등을 모두 포함한다. 때문에 작화(그림)로만 작품의 퀄리티를 평가하는 것은 만화의 극히 일부분-흔히 짤방으로 표현되는-을 평가하는 것이다. 단순히 시각정보의 밀도, 작화에 들인 시간과 노력, 심도 높은 표현이 곧 퀄리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작화면에서 압도적인 내공을 가진 출판만화 시절 이름난 작가들이 웹툰에서 실패를 거듭했던 지난 10년을 생각해 보면, 결국 한가지 요소가 퀄리티를 증명하지 않는다는 말을 확인할 수 있다.

 

만화의 퀄리티를 평가하려면 종합적인 요소를 개별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만화를 보는 독자들의 목적에 맞는 평가가 필요하다. 결국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는 독자에게 ‘읽히는 것’이 목적이고, 독자들이 흥미로워 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면 독자의 경험을 해치지 않고 제대로 읽히게 하는 ‘독자 경험’이 만화의 퀄리티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독자 경험이 가지는 기능과 한계

 

‘독자 경험’이란 독자가 작품을 읽는동안 느끼는 경험의 총합을 말한다. 만화를 읽으면서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배치한 그림을 비롯한 형상의 총합, 즉 작화와 연출을 통해 만들어낸 작품을 독자가 읽으면서 의도한 바를 얼마나 정확하게 독자들에게 경험하도록 할 수 있는가가 작품의 퀄리티라는 말이 된다.

 

흔히 이야기하는 페이지 만화에서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연출’이 가지는 효과, <슬램덩크>에서 독자들이 숨을 멈추고 읽게 만드는 대사가 없는 페이지가 노리는 효과를 독자들이 얼마나 충실하게 따라올 수 있도록 유도했는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충실하게 구현되었는가가 작품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그러니까, 독자가 몰입해서 읽을 수 있도록 기대하도록 만들고, 그 기대를 활용한 연출을 통해 작품 속으로 빠져드는 경험에 값을 매길 수 있다면 그게 퀄리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연출을 통한 유도 + 독자의 기대가 독자경험을 만든다

이건 가독성과는 다르다. 쉽게 읽히는 것과 ‘작가가 의도한 바’가 부합하지 않을 경우, 즉 작가가 독자들에게 혼란을 겪게 하거나, 읽기 어렵기를 의도했다면 단순히 가독성이 높은, ‘읽기 쉬운’ 작품이 퀄리티가 높은 작품은 아니다. 때문에 거칠게 나누면 장르에 따라 작품의 ‘퀄리티’의 기준이 달라지게 된다. 개그만화, 스포츠 만화, 이능력 배틀물, 로맨스 등 장르에 따라 퀄리티의 기준은 달라진다. 결국 작품의 퀄리티를 떨어뜨리는 요소는, 작품을 보는 독자가 만화를 덮게 만드는 요소, 즉 독자 경험을 해치는 요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기 어려운 ‘독자 경험’이 퀄리티의 기준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빈틈이 생긴다. ‘명작을 보려면 아래로 가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특히 현재의 웹툰처럼 실시간으로 댓글을 통해 평가받는 시스템은 이 빈틈을 더 크게 만든다. 독자 경험은 기본적으로 만화를 읽는 연속된 시간 속에서 발생하는데, 주간연재를 쫓아가는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완결까지 달려가지 못하고 독자 경험이 끊기게 만드는 한계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실시간으로 댓글로 작품을 평가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1회차, 더 짧게는 시퀀스, 심지어는 컷마다 독자의 의견이 아무런 여과 없이 달리게 된다. 심지어는 맥락과 아무 상관없는 한 컷이 평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만화를 ‘만화’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만화에서 떼어낸 조각으로 만화 전체를 평가하는 셈이다. 만화는 ‘연속 예술’이며, 전체의 맥락에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즉흥적, 파편적인 평가를 정당한 평가라고 보기는 힘들다. 

 

더불어 독자경험이 주관적인 기준이기 때문에 결국 보다 많은 대중에게 선택받은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는 쉽고 게으른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만화를 평가하기 위해선 작품의 연속된 장면들을 읽어보는 독자경험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독자 경험을 풀어내 설명할 수 있는 독자 역시 그리 많지는 않다. 독자경험을 풀어내 설명할 수 있는 평론가 등 전문가의 의견만으로 ‘좋은 작품’을 고르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들의 의견 역시 주관적 경험을 통해 작품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 작화 붕괴의 이면

 

그래서 작품 퀄리티 논쟁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작화 붕괴’다. 눈에 쉽게 띄고, 찾기 쉬우며 한장으로 공유하기 쉽기 때문이다. 작화 붕괴는 작품의 전체 흐름과 상관없이 튀어나오거나, 망가진 작화를 말한다. 때문에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작품을 보다가 망가진 작화로 작품에서 ‘튀어나오게’되고, 작품에 몰입하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독자 경험이 연속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부정할 수 없는 퀄리티의 저하다. 또한 작화 붕괴는 해당 장면만 캡쳐하거나 떼어내어 봐도 자연스럽지 않은 경우가 있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뜨겁게 타오르는 논쟁의 발화점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논의의 전제에 포함되지 않았던 한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앞서 논의에서는 작가가 작품을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제작하고, 충분한 검토를 거쳤을 경우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현재의 웹툰 제작 시스템은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곤 충분한 시간이나 인력이 투입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18 콘텐츠진흥원 웹툰작가 실태조사

 

주간 마감이라는 벽이 있는 한, 작품에 충분한 시간을 들일 수가 없는데다 전문적인 편집인력이 투입되어 독자로서 작품을 검수해줄 수 있는 인력 역시 부족한 경우가 허다하다. 작품 안에서 독자 경험이 깨지는지 제대로 검수할 시간조차 부족하다면, 논의의 시작점을 작품이 아닌 그 이전으로 돌려야 하지 않을까? 1주일 평균 6일,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을 일하는 상황에서 작품이 망가지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수정할 수 없이 일단 마감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더해 실시간으로 작품을 조각조각 평가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논의는 조금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최소한 작가 개인에게 책임을 쏟아내는 것은 옳지 않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 나가면서

 

작품의 퀄리티를 논하는 데는 여러가지 측면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 만화는 그림이나 글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림과 글을 연출을 통해 재배치하면서 발생하는 효과를 감상하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논할 때, 또는 소설을 이야기할 때 한가지 요소만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대와의 호응, 표현의 유려함이나 진부함, 구시대적인 표현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떼어낸 한 장면만이 전부를 잡아먹는 것은 우려스럽다. 그래서 ‘만화의 퀄리티’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역시 이런 질문에는 명쾌한 답을 내리기는 힘들다.

 

지금까지 작품의 퀄리티를 논하기 위해서는 만화를 규정하는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요소들이 목표하는 바를 작가의 의도로 배치된 연출로 표현된 개별 작품에 대한 독자경험이 중요하지만, 객관적 지표가 될 수 없는 독자경험은 결국 대중의 선택이라는 수치로만 해석되는 한계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관적 독자경험을 공유하고,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과정에서 좋은 작품을 발굴하기도, 고평가받은 작품을 다시 평가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논의의 과정이 확대되는 것이 작품의 퀄리티에 대한 (비록 명쾌하진 않더라도) 기준을 만드는 방법이 될 것이라는 뻔한 답 밖에는 내릴 수가 없다.

 

바로 그래서, 만화를 읽고 논하는 것이 보다 보편적인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웹툰이 대중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면, 창작환경이 작품 제작에 영향을 끼치는 비율이 낮아지고, 보다 전문적인 창작 시스템이 갖춰지기를 기대한다. 또한 우리가 만화를 이야기하고 논쟁하는 것 역시 단순히 고발-비난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논의가 일상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 과정에서, 희미하게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만화의 퀄리티에 대한 논의가 보다 명확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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