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폐지 청원 청와대 답변 들여다보기

지난 10월, 도서정가제 폐지 청원이 20만명을 넘어 청와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12일, 청와대는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통해 답변을 전했다. 12분간의 답변 영상에 담긴 메시지를 확인하고, 웹툰-웹소설 등의 콘텐츠 업계와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답변하는 박양우 문화체육부 장관

 

 

* 도서정가제, “개선 필요”

 

“우리나라의 지역서점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해오다가 현행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최근 독립서점의 수가 증가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도서 목록이, 구간(舊刊) 중심에서 당해 연도에 발행된 신간들 중심으로 재편되어 출판시장이 점차 건강해지는 경향도 보이고 있습니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이렇게 의미있는 현상도 있습니다만, 청원인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국민들의 독서율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출판산업 또한 도서 초판발행부수가 감소하고 전체 매출규모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독립서점 수가 증가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구간 중심에서 신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어 건강해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독자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독자들은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는 책, 유튜브 등을 이용해 활발하게 홍보할 여력이 되는 책들이 잘 팔리는 것이 건강한 시장인가”라고 되묻는다. 실제로 베스트셀러 도서 중 일부가 내용의 대부분을 짜깁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가 하면, 유명 캐릭터를 앞세운 마케팅은 물론 이른바 ‘다단계’ 마케팅을 통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는 것처럼 꾸며 판매량을 늘린다는 의혹이 올해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좋은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이 책의 판매량을 좌우하기 때문에 신간 판매량이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는 주장이다. 

 

“정부에서는 지난 12월 초, 현행 도서정가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등을 알아보기 위하여 ‘도서정가제에 대한 인식’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사 결과 많은 국민들께서 도서정가제의 취지에 공감하고 계신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행 도서정가제로 인하여 도서가격이 비싸졌다고 인식하는 등 소비자 부담이 가중된 측면이 있고 이에 도서 구매를 꺼리게 된다는 응답이 있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도서정가제의 향후 방향에 대해서는 전자책에 대한 별도 제도를 마련하고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는 등 제도를 보완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응답이 77.5%로 매우 높았습니다.”

박 장관은 이렇게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답변했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질문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미 2년 전에도 도서정가제 소비자 설문의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미 지난 2017년 도서정가제 개정 이슈가 있었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구성된 도서정가제 보완-개정 협의회에는 8개의 민간단체가 참여하고 있지만,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출판인회의,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한국서점인협의회 등 4곳은 완전정가제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결국 별다른 진전 없이 일몰기한을 마쳐 2017년 11월 현행 도서정가제가 3년 더 유지되었다.

 

당시에도 높았던 소비자들의 반대 여론이 반영되지 못한 채로 과반이 넘는 출판계와 출판계의 영향을 받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대형서점 등이 주체가 된 논의 과정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번 여론조사 역시 결과를 확인할 수 없지만, 제도 보완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80%에 육박해 소비자들의 불만이 부족하나마 반영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청원은 정부가 도서정가제를 비롯하여 변화하는 출판산업에 맞춰 정부의 진흥 정책에 대해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시는 국민 여러분의 따끔한 질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도서정가제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도서정가제란 출판사가 정한 도서의 정가를 소비자가 알 수 있게 표시하고 그 정가대로 판매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시장에서 자본을 앞세운 대형.온라인 서점 및 대형 출판사의 할인 공세를 제한해 중소규모의 서점이나 출판사도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서정가제의 기본 취지입니다. 도서정가제는 프랑스, 독일 등 다양한 국가에서도 같은 취지로 도입 및 시행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이 부분을 지적한다. 가장 오랜 도서정가제의 역사를 가진 프랑스에서는 1980년대 이른바 ‘랑법’으로 불리는 정가의 5%만 할인할 수 있도록 해 가장 튼튼한 서점 문화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아마존이 들어오면서 온라인 서점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자 프랑스의 현행 도서정가제는 2014년 ‘반아마존법’으로 불리는 개정안을 도입한다.

 

반아마존법은 두가지 조항을 규정하는데, 첫번째는 ‘온라인 판매는 정가 판매’, ‘무료 배송 불가’ 조항이 그것이다. 온라인 서점이 가진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을 서점으로 불러모으는 효과를 가져오겠다는 정책이다. 독자들은 우리나라의 도서정가제는 온라인 서점에 유리한 정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오프라인 서점을 살리는 정책이라고 소비자를 기만한다고 말한다. 온라인 서점을 통한 판매가 늘어나면서, 도서정가제를 주장하는 출판계 역시 온라인 서점을 주요 판매창구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독자들은 1인당 연평균 독서량이 10권을 넘는 나라와 역대 최저를 갱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같을 수 없는데, 오히려 온라인 서점에 유리한 규제안으로 중소형 서점들은 불리해지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계의 요구대로 완전도서정가제로 가는 것은 출판 시장을 더욱 경직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박 장관이 완전도서정가제를 검토한 적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못박은 것이다.

 

* 전자책, 과연 어떻게?

 

“다음은 청원인께서 언급하신 전자책에 관련한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흔히 ‘E북’이라 하는 전자책은 출간 시 종이책과 마찬가지로 ISBN, 즉 국제표준도서번호를 발급받을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법령에서 정하는 ‘전자출판물’로 분류가 됩니다.

전자출판물로 분류가 된 전자책은 종이책과 동일한 혜택과 의무를 적용받습니다. 부가가치세 10%면세 혜택과 함께 ‘도서정가제’의 의무 역시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웹툰, 웹소설 등 디지털콘텐츠 제작사는 ‘전자출판물’로서 ISBN을 발급받아 출간하거나, 아니면 ISBN 발급 없이 작품을 소비자들에게 유통하는 방법을 선택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답변은 정론이다. ISBN을 발급받는 ‘도서’ 형태로 유통되는 경우에는 도서정가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해외의 경우, 도서를 다운로드 받아 ‘소장’하는 형태로 진행되지만 국내의 경우 DRM(Digital Rights Management: 디지털 권리 관리)제한을 두어 특정 기기에서만 사용이 가능하거나, 아예 기기 안에 소장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도서정가제의 영향을 받는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결국 물성을 가진 ‘책’을 소유하는 것과 e북을 ‘소유’하는 것이 구매자가 보유한다는 측면에서 동일해야 하는데, 현행 플랫폼들에서 책을 구매하면 플랫폼이 사라지면 책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된다. 소비자들은 한결같이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는 e북은 플랫폼이 사라지면 더 이상 책을 볼 수 없는데, 어떻게 실물을 구매하는 ‘도서’와 같게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느냐”고 분노하고 있다. 웹툰과 웹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구매라고 해도 다운로드 받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실물 도서와 똑같은 규제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독자들의 목소리가 높다.

 

“물론 청원인께서 제기하신 것과 같이 웹툰, 웹소설 등 디지털콘텐츠 기반의 전자출판물 시장이 점차 커지고 있고 기술발전과 함께 유통방식도 다변화되고 있습니다.

종이책과 제작 및 유통방식이 다른 전자출판물에 일률적으로 도서정가제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제기 된 것을 고려해서 정부는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대비해 나가겠습니다. 또한 도서정가제 강화정책으로 현재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제공되고 있는 전자책의 ‘대여서비스’가 종료된다는 일부 주장과 국민의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도서정가제는 현재 ‘판매’되는 도서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님을 바로잡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위 답변처럼 디지털콘텐츠 기반의 ‘전자출판물’ 시장이 커지고 있어 일률적인 도서정가제 적용이 어렵다는 의견을 고려하겠다고 답변한 점이다. 또한 대여서비스 종료 우려에 대해서도 ‘판매’ 도서에만 적용되므로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이는 또 한번 ‘대여 기간’ 논쟁과 앞서 언급한 e북 구매와 실물책 구매를 동일하게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의 불만이 얼마나 적용될지를 지켜봐야 한다. 만약 지금과 같이 헛점이 많은 제도를 유지한다면, 도서정가제를 고쳐 쓰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이번 청원을 계기로 회의체에 웹툰, 웹소설 등의 새로운 출판문화를 대변하는 위원을 포함하여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하겠다고 전했다. 국민의 목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렴하기 위한 여론조사의 분석 결과도 반영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출판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출판과 유통 서비스가 생겨날 수 있도록 지원 정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한 목소리가 필요하지만, 뭉쳐지지 않는 웹툰업계

 

원론적인 답변이긴 하지만, 완전도서정가제는 검토한 적도, 계획도 없다는 답변을 통해 일각에서 우려가 제기되는 완전도서정가제 도입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동시에 웹툰, 웹소설 등 온라인 판매가 중심이 된 새로운 형태를 규정하는 제도를 포용하거나, 현재 웹툰계의 요구대로 완전히 분리하는 안에 대해서도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입장에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원론적이면서 안전한 선택이다. 다만, 박 장관의 발언을 놓고 보면 이미 웹툰과 웹소설이 ‘출판’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더불어 20조원에 육박하는 산업규모를 가진 출판계와 비교하면 산업 규모 면에서도 아직 작고, 성장하는 산업인 웹툰시장의 리스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책의 편의성에 맞추어 정책이 만들어 질 경우 큰 규모를 앞세운 출판시장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대형 플랫폼의 경우엔 이미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유료매출에 의존하는 중소 플랫폼 및 출판 기반의 제작사 같은 경우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산업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업계가 한 목소리를 내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는 많은 관계자가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도서정가제 이슈에 대해 “업계의 사정이 업체별로 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업체마다, 또 작가마다 관심도나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느낄 수도 있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라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출판문화진흥원 등에서도 웹툰계의 공식 입장을 들을 수 있는 창구가 없어서 답답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만화영상진흥원을 비롯한 공공기관은 물론 각 협회들에서도 입장 차이가 있다. 이 말은 곧 정책 입안을 위해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목소리가 없다는 말이다.

 

도서정가제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선, 웹툰의 허리를 담당하는 유료플랫폼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협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반년, 웹툰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테이블이 열린다. 웹툰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가 앞으로 웹툰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그러려면 웹툰계가 하나로 뭉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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