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틴맘” 논란, “의미있는 메시지”는 섬세한 고민에서 나온다

웹툰의 해외진출이 활발해지는 만큼, 우리나라로 역수입되는 해외 웹툰의 사례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2015년 아만(阿慢)작가의 <백귀야행지>가 연재되는 등의 사례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 청소년 임산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지만 표현 등에서 논란이 된 <틴맘> 역시 태국에서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연재되면서 독자들 사이에서 거센 항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 논란을 들여다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 현실의 문제, 지워지는 당사자

<틴맘>은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말 번역 연재판은 1화밖에 등록되지 않았지만, 태국판을 확인해보면 대략 3회차 분량까지를 하나로 묶어서 등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수정되었지만 임신 사실을 확인한 주인공이 남자친구에게 차이면 어떡하는지를 고민하는 지점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주인공 윤하늘은 임신 사실을 알고 난 후 이미 벌어진 일은 받아들이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를 나타내며 동시에 아이 아빠에게 같이 책임지기를 요구하기보다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모습이 현실의 미혼모를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겪는 두려움과 고통을 ‘의지의 문제’로 환원하거나 단순히 여고생 캐릭터를 내세워 화제를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타당합니다. <틴맘>의 표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장면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현실에 존재하고,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실재하는 당사자를 외면한 채 취재를 통해 채워야 할 부분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채웠다는 비판입니다. 남성 작가로 알려진 theterm 작가는 본인이 당사자가 될 수 없는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보다 섬세하게 접근해야 했어야 하지만, 자신의 상상으로만 풀어나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에 독자들이 거세게 항의하는 한편 트위터를 중심으로 “틴맘 퇴출”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네이버에서는 작가의 말 란을 통해 네이버에서는 “10대 임신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있게 다뤄 태국 연재 이후 많은 인기를 얻었다”며 “주인공의 주체적인 고민과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작품의 메시지가 의미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주인공 윤하늘이 샤워 후 다리와 가슴이 부각되는 등 여성의 신체를 부각하는 장면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타당합니다. 단발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지속되고 있는 문제인지 확인한 결과 태국판에서도 소위 ‘서비스 컷’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들이 다수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태국판의 ‘서비스 컷’을 모아 “은꼴”이라고 표현하는 등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틴맘> 태국판 8화에서 등장하는 맥락없는 탈의 장면. 
대사는 “지도를 보니까 백화점이 있던데” “무엇을 사지?”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토막난채로 대상화되는 여성 캐릭터가 “스스로 결정했다”는 설정 하나만으로 주체적인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는지, 그리고 현실과 주인공의 선택이 얼마나 유리되어있는지를 생각해보면 <틴맘>에 대한 비판은 타당합니다.

 

 

* 서로 다른 시선, 서로 다른 평가 

일부 남성 독자와 작가들은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태국의 문화적 배경에서는 인기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9월 태국 언론사 카오수드 잉글리시에 실린 “태국 여성에게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는 멀기만 하다(Safe, legal abortion still out of reach for many Thai women)”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대략 20만명의 임신 여성이 합법, 비합법적 채널을 통해 낙태 시술을 받고 있으며, 최소한 수십명이 사망하고 수만명이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기사에서는 크리타야 아카바닛쿨(Kritaya Archavanitkul) 마히돌대 교수의 말을 빌려 “경찰 중에는 아직도 모든 형태의 낙태가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의료계 종사자 중에서도 도덕적인 이유로 시술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태국에서 임신의 당사자가 될 수 없는 남성으로 태어나 자란 것으로 추정되는 작가가 제작한 만화에 호평이 이어졌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태국에서 호평을 받았다고 해도 그것이 당사자, 즉 여성의 시각에서 호평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남성 독자들의 시선에서 호평을 받은 것인지 고려해야 합니다.

 

 

태국판 15화, 간호사인 등장인물이 주인공에게 “비록 어리지만 좋은 엄마가 될 운명이라는게 느껴져”
“너는 분명 좋은 엄마가 될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 

 

또한 태국에서 “원치 않는 출산이라도 낳아서 길러야 한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다면 그것 역시 고려해서 호평의 원인을 분석했어야 옳습니다. “해외에서 인기가 있는 작품이니 문제 없다”는 말은 불후의 명작 반열에 오른 <드래곤 볼>에 문제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드래곤볼도 현재 <틴맘>에서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성적대상화의 문제를 피할수는 없습니다. 반면 “그게 왜 문제냐”고 주장하는 쪽의 시선을 생각해본다면 이번 논란의 무게가 어디에 실려야 하는지는 자명합니다.

 

 

* 편집부의 역할 

<틴맘>은 태국 라인웹툰에서 130화가량 연재한 장수 웹툰입니다. 2015년에 시작한 이 작품이 연재를 계속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쇼쇼 작가의  <아기낳는만화>가 연재를 시작했다가 완결할 정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공교롭게도 연재처는 같은 네이버였습니다. 이런 소재를 통한 반응이 어땠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던 네이버가 <틴맘>의 연재를 결정하면서 이 지점을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불과 1년 전 연재된 <아기낳는만화>

 

하지만 더 납득이 어려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회가 올라온 이후 논란이 되자 수정에 나선 것은 굉장히 아마추어적인 발상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최근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단이 66년만에 나오는 등 사회 변화상에 맞추어 작가와 협의하에 수정 내용등을 활발하게 논의했어야 합니다. 작품을 검열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로컬라이징을 위한 작업을 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네이버 편집부는 지난 <노블레스> 엔딩 문제에 이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 섬세한 논의와 공론의 장 있어야 

소비자인 독자의 불매운동은 정당한 권리입니다. ‘문제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그 문제의 당사자들을 배제하는 얄팍함은 비판 받아야 마땅합니다. 유통사인 네이버가 한국 실정에 맞게 작품을 로컬라이징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원작자가 그것을 허락하도록 설득하는지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네이버 등 초거대 플랫폼에서 작품을 소개 할 때, 일반적으로 ‘문제적’인 소재를 다룰 경우 캐릭터는 대중적인 지위를 얻게 되어 대표성을 띄게 되는 만큼 보다 냉철하고 섬세한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단순히 크기를 과시하는 시기를 넘어 이제는 보다 폭넓은 논의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최근 네이버에서 재연재되고 있는 <용비불패 완전판>의 경우에는 시대에 맞춘 적절한 수정을 한 예가 있어 충분히 가능한 고민입니다.

 

<틴맘> 사레처럼 느리지만 번역을 통해 확인이 가능한 작품의 경우와는 다르게 최초로 연재되는 작품이라면 이야기가 약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문제적” 소재를 영리하게 다루는 작품과 그걸 다룸에 있어 “문제가 있는” 작품을 구분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주간연재 방식에 대한 고민이나 기존 제작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입니다. “1회에서 모든것이 결정되는” 방식이 옳은지에 대한 질문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다만 “문제가 있는” 작품이라고 해서 작품을 일방적으로 연재중단하거나, 여론에 떠밀려 모든 책임을 작가에게 떠넘기는 행태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작품을 선택한 건 플랫폼이고, 플랫폼 역시 작품을 독자들에게 설득하는데 힘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제작사, 프로덕션 등 전문화-분업화가 진행중인 웹툰 시장에서 보다 섬세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공론장에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가볍게는 웹툰인사이트에 마련된 포럼부터, 작가와 전문가들간의 담화 형태와 관련 연구 등 분야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논의가 활발해지길 바랍니다.

 

<틴맘>은 남성 중심적 시선으로 남성이 당사자가 될 수 없는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작가가 가지고 있었던 의도가 선의에 의한 것이거나 원작이 연재된 국가 등에서 호평받았다는 것 만으로 작품을 평가할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1회뿐 아니라 태국 연재분에서 드러난 연출이 “주체적 주인공”을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네이버웹툰 편집부가 작가와 협의를 통해 수정하겠다고 공지하긴 했지만, 독자들의 불매운동 역시 권리입니다. 과연 어떻게 연재가 될 지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며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이번 논란은 단순히 이 작품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간연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적’ 소재의 사용에 대한 고민으로 문제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웹툰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보다 질높은 문화콘텐츠로서 발돋움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태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섬세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연관 링크>

* 카오수드 잉글리시 “태국 여성에게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는 멀기만 하다(Safe, legal abortion still out of reach for many Thai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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